관리 메뉴

과학기술계 한 목소리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전화위복 기회 마련하자" 본문

정책연구 및 자문/한림원탁토론회

과학기술계 한 목소리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전화위복 기회 마련하자"

과기한림원 2019. 8. 8. 17:10

과기한림원-한국과총-공학한림원, 7일 양재 엘타워에서 긴급토론회 개최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에 대한 과학기술계 대응 방안' 주제로 논의

 

박재근 한양대학교 교수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를 수출 심사 간소화 우대국 명단인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공포함에 따라 관련 산업 분야와 국가경제 전반에 타격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과학기술계가 대응방안 마련을 위한 긴급 토론회를 개최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회장 김명자), 한국공학한림원(회장 권오경), 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 한민구) 등 과학기술계 3대 기관은 8월 7일(수) 오후 3시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에 대한 과학기술계 대응방안’을 주제로 긴급 공동토론회를 진행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학회장을 맡고 있는 박재근 한양대학교 융합전자공학부 교수가 주제 발표를 통해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술과 산업을 글로벌 수준으로 육성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을 제안했으며, 이후 이어진 지정토론에서는 소재·부품·장비 분야 산업계 인사들과 학계, 법조계 전문가들이 현장의 경험과 현황을 바탕으로 보다 구체적인 논의와 실효성 있는 전략적 제언들을 쏟아내며 이번 사안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한편, 이날 마련된 긴급토론회에는 약 450여 명의 참석자들이 몰리며 사안의 심각성을 짐작케 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3개 과학기술단체는 “일본의 수출규제 및 화이트 리스트 배제 조치로 인한 난관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과학기술계 관련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과학기술과 산업역량의 강화를 위한 전략을 토론함으로써 전화위복의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라며 “이번 사태가 국내 기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모멘텀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성수 과학기술혁신본부장, 한민구 과학기술한림원 원장, 권오경 공학한림원 회장, 김명자 과총 회장

김성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역시 축사를 통해 “이번 일본의 조치는 현재 우리나라의 주력산업 뿐만 아니라 미래 산업까지 정조준하고 있다”라며 “현재 정부는 핵심원천소재의 과도한 해외의존도를 낮추고 기술 자립을 실행하기 위한 범부처 소재·부품 R&D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며,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김 본부장은 3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토론회를 끝까지 경청하고 “오늘 나온 의견들을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R&D 세부계획에 잘 담도록 하겠다”라며 “훗날 이 위기가 대한민국이 한 번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소회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정리했다.

◆ “장기적 대응 전략 마련 시급…이번에야 말로 극복할 때”

박재근 한양대 교수

‘일본 정부 수출규제 및 화이트리스트 제외에 따른 국가적 대응’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한 박재근 한양대 교수(공학부 정회원)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소재·부품·장비의 수입국 다변화를 추진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이 분야 글로벌 기업이 나올 수 있게 장기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보호무역주의가 앞으로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국가 핵심 소재·부품·장비의 리스트를 만들고, 이 품목을 관련법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범국가적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부품·장비 글로벌 육성 R&D 추진을 위해 대학 교수, 출연연 연구원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소재 부품 장비회사 R&D 센터 파견 근무 허용할 것과 국가 핵심 소재·부품·장비 분야별 사업단 형식으로 국가 R&D 추진 및 수요기업(대기업) 참여 의무화할 것을 제안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반도체 분야의 R&D 규모는 감소하고 있다. 관련 예산은 대폭 삭감됐으며, 과제수도 반 토막 난 상태였다. 산업통상자원부의 반도체 분야 R&D 사업 지원 예산을 보면 2009년 1,003억2,400만 원에서 2017년 314억1,700만 원 수준으로 삭감됐다. 석·박사 인력도 줄고 있다. 서울대의 경우 2008년에는 이 분야에서 석사 65명, 박사 38명이 나왔지만 2013년에는 석·박사 각각 20명씩, 2016년에는 석사 4명, 박사 19명이 졸업하는 데 그쳤다.

 

그는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IT 분야의 세계밸류체인(value chain)이 붕괴하며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가 영향을 받았다“라며 ”당시 우리나라도 영향을 받아 국가별 수입 다변화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자 더는 국산화가 추진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당시 어려움을 겪었을 때 준비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많다”라며 “이번에야 말로 전략적으로 나서서 장기적 플랜으로 대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볼 때 일본 수출규제가 한국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반도체 미세공정화를 극복하기 위해 그동안과는 다른 새로운 소재가 필요하고 이를 적용할 새로운 장비도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그동안 해외에서 도입해온 소재와 장비를 국산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우선 박 교수는 5년간 1,000억 원을 들여 반도체 연구를 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테스트베드 운영의 경우, 비영리법인이 맡고 기업 엔지니어를 해당 시설에 파견하여 테스트베드에서 일정 기준을 만족하는 제품이 나오면 기업이 이를 일정량 구입하게 하는 것도 활성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이밖에도 그는 대기업 참여를 통한 국내 반도체 디스플레이 소재 장비회사의 글로벌수준 육성과 반도체 디스플레이 분야 국가 부품·소재·장비 핵심 기술 지정, 정부의 관련 분야 육성 의지와 국가 R&D 예산 증대, 1차 2차 테스트베드의 구체적 지원, 정부-소재장비 CEO와의 연도별 관련 소재 국산화 R&D 지원 계획제시, 인력양성 등을 제안했다.

 

박 교수는 "지난 35년간 반도체 업계가 많은 위기를 겪어왔고 그때마다 기업과 과학기술계가 위기를 극복하는 것을 봤다"며 "시간의 문제지만 이번에도 분명 극복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우리 과학기술계와 산업계의 저력에 대한 지지와 믿음을 강조했다.

 

◆ “고유한 기술력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 우뚝 서야”

패널토론자들. (좌측부터) 박영수 솔브레인 부사장, 이종수 메카로 사장, 주현상 금호석유화학 팀장, 김호식 엘오티베큠 사장, 서진천 프리시스 대표, 이현덕 원익IPS 대표,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김태성 성균관대 교수, 황철성 서울대 교수, 최지선 로앤사이언스 법률사무소 변호사

주제 발표 후 진행된 지정토론에서는 단기적 해결방안 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소재·부품·장비산업의 자립화와 글로벌 수준의 국산화를 위한 대책까지 도출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됐다. 실효성 있는 전략들이 제시 되어야 하는 만큼 각 분야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장석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좌장으로 소재 분야에서는 박영수 솔브레인 부사장과 이종수 메카로 사장, 주현상 금호석유화학 팀장이, 부품 분야에서는 김호식 엘오티베큠 사장과 서진천 프리시스 대표이사가, 장비 분야에서는 이현덕 원익IPS 대표이사와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이 참석했다. 또한, 학계에서는 김태성 성균관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와 황철성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가, 법조계에서는 최지선 로앤사이언스 법률사무소 변호사가 참여했다.

 

(윗줄 왼쪽부터) 주제발표를 맡은 박재근 한양대 교수, 좌장을 맡은 장석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패널토론자 박영수 솔브레인 부사장, 이종수 메카로 사장, (중간줄 왼쪽부터) 주현상 금호석유화학 팀장, 김호식 엘오티베큠 사장, 서진천 프리시스 대표, 이현덕 원익IPS 대표, (아랫줄 왼쪽부터)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김태성 성균관대 교수, 황철성 서울대 교수, 최지선 로앤사이언스 변호사

일본의 규제 조치로 직격탄을 맞은 산업계 관계자들은 국산화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품질과 가격 경쟁력이 전제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또한, 국가적 위기인 만큼 시급한 소재 개발을 위해 주 52시간 근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 공감했다.

 

국내 불화수소 제조사인 솔브레인의 박영수 부사장은 “사실 모든 것을 국산화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한 효율적이지도 않다”라며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향후 10년간 고유한 기술력으로 지속가능한 결실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단순히 극일(克日)을 위한 국산화가 아니라,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과 '윈-윈'하는 실효성 있는 소재 기술 개발이 전제되어야 한다”라며 “국내 소재·부품 기업들이 최고의 품질과 저렴한 가격을 갖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부가 앞장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수 메카로 사장 역시 기술의 국산화가 쉽지 않다는 것에 동의했다. 그는 “중장기적으로 가능하지만, 단기적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전체 반도체 소자 특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미세화 될수록 검증이라는 절차가 까다롭게 적용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장은 “수요와 공금 업체 간 부담을 줄이기 위한 테스트베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 뒤, “대기업이 국내 기업들의 제품을 사용한다는 의지를 보여주면 국산화 개발은 순항할 수 있다”며 국가적 위기에 대응하는 초당적 협력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김호식 엘오티베큠 사장은 국산화 추진을 위해 주 52시간 근로제 같은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장 속이 아팠던 정책이 바로 주 52시간제였다"며 “개발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야 하는 만큼 영세업체들이 많은 기업들을 위해 정책을 완화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실을 직시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금호석유화학의 주현상 팀장은 "D램용 불화아르곤(ArF) 감광액은 개발 완료까지 1~2년, EUV(극자외선)용 감광액은 2~3년 이상 시간이 필요하다"며 "강대강(强對强) 행보보다는 유연하게 일본의 규제 완화 방안을 찾으면서 소재 개발은 장기 플랜으로 가야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이현덕 원익IPS 대표이사과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국산화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먼저 길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현덕 대표이사는 “왜 국내에서 글로벌 톱 티어 회사 수준의 종합 장비 회사가 나오지 않을까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기술은 점점 어려워지는데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가 적어 도전의 가치가 상실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느 한 가지가 아니라, 전체적인 면에서 수준이 올라가야 전체 가치사슬이 잘 구성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황철주 회장 역시 “이제 공식이 바뀌어야 한다”며 “모방이 아닌 혁신을 할 수 있도록 대기업, 국가, 공무원 등이 리스크를 지고 중소기업은 속도와 시간을 극복해주는 것이 우리가 살아남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서진천 프리시스 대표이사는 인식 변화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그는 “국내 반도체 시장에는 이미 미국과 일본, 유럽 등의 글로벌 업체들이 상당수 진입해 있다”며 “국내 소재부품 업체가 시장성에 한계를 지니고 있는 만큼, 국산화를 위해서는 무조건 국산 소재 부품 가격이 저렴해야 한다는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계와 법조계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을 모색하고 나섰다.

 

황철성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는 현실을 좀 더 냉정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점유율이 중요 원인일 수 있다”라며 “한국의 D램 반도체 시장점유율이 낮아진 만큼 다른 나라나 기업들이 반사이익을 누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비메모리반도체 분야에 집중하는 성장 정책도 좋지만 세계 1위인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전략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태성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평가에서 가장 좋게 평가되는 것은 임팩트 팩터가 높은 저널에 논문을 싣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산업이나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연구보다는 나노, 바이오연구를 하게된다"며 평가시스템의 변화를 제안했다.

최지선 로앤사이언스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과기출연기관법의 개정을 피력했다. 그에 따르면 현 사태와 관련해 여러 출연연이 협의회를 구성하고 있지만 과기출연기관법은 출연협의나 공동연구 등 전체를 아우르는 조직 컨트롤타워 육성 관련 내용이 완전히 공백이다. 최 변호사는 "이 부분 개정해 출연연이 시너지를 낼 수 있게 유기적·능동적으로 움직이게 하면 대기업 중소기업과 출연연 중요 매개체 역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450여명의 청중들이 행사장을 찾았으며, 윤종용 삼성전자 전 부회장(앞줄 오른쪽 두번째) 등 과기계와 산업계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