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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학자의 ‘객관적 긍정’…“노벨과학상 수상과 과학문화 성숙, 10년 내 가능하다” 본문

한림원 사람들/회원

통계학자의 ‘객관적 긍정’…“노벨과학상 수상과 과학문화 성숙, 10년 내 가능하다”

과기한림원 과기한림원 2013.10.25 15:44

[창간인터뷰] 박성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국가경쟁력과 미래 위한 과학기술 강조
20년차 과기한림원, 국제 교류, 정책 제안 활성화 목표 

 

“물론 아쉽죠. 노벨과학상이 113년이나 되었는데 그 긴 세월 우리나라가 한 번도 못 받은 것이 왜 아쉽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5∼10년 안에는 받을 것을 확신합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통계학자로서 분석 결과입니다.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어느 나라든지, 국가가 기초과학에 투자한지 30∼50년 후에야 성과가 나옵니다. 우리나라는 1977년 한국과학재단의 창립과 더불어 기초연구가 시작되었으나 본격적인 기초연구 투자는 1990년 우수연구센터(SRC/ERC)육성사업 추진이 된 해부터 봐야 합니다. 이를 근거로 10년 내에는 반드시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아쉽지만 기다려 보는 겁니다.”

 

한림원장에게 노벨과학상 수상시기에 대한 예측은 단골질문이다. 여기에 박성현 원장은 통계학의 대가답게 객관적 수치를 근거로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리나라 과학기술과 경제․문화 발전에 대한 그만의 ‘객관적 긍정’은 인터뷰 내내 지속됐다.

 

스스로를 ‘보수적인 과학자’라고 칭했지만, 그의 날카로운 눈매와 입매에 은근히 깃든 온화한 미소처럼 현실에 대한 이성적인 분석은 매번 따뜻한 긍정의 결과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는 30년 넘게 우리나라 과학기술 연구와 산업의 현장을 지켜오면 쌓인 인간에 대한 신뢰가 있어 가능한 듯 보였다.

 

노벨상 수상에 대한 소식으로 언론이 뜨거운 10월 중순,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온라인 소식지 창간을 기해 박성현 원장을 찾았다. 마침 한국과 독일이 공동 개최하는 첫 번째 줄기세포 심포지엄을 다녀온 후였다.

 

 

박 원장은 “오늘 행사에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국내 과학기술인들이 매우 많이 모였다”며 “기초과학분야에 대한 저변이 넓게 확대되고 있음을 체감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은 좀 더 인내하고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를 늘려가며 기다려야 할 때”라며 “정부가 기초연구의 투자 비중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 수치가 의미 있으려면 정부R&D규모가 매년 증액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연구자들 역시 기초연구가 기초연구로만 끝나면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기초에서 응용으로, 다시 개발연구로 이어져야 훨씬 가치가 높은 연구이므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서 기초연구를 하되, 궁극적으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올해 초, 폭넓은 산업계와의 협력 연구 경험으로 ‘창조경제에 딱 맞는 과학기술한림원 수장’이라는 평가와 기대를 받으며 부임한 박성현 원장을 만나 인생철학과 한림원 경영 목표 등을 들어봤다.

 

“40년 전 대입, 의사 되고 싶었으나 모두들 공대 가야 한다고 말하던 때였다”

 

박성현 원장은 학사와 석사, 박사의 전공이 모두 다르다. 학사는 서울대 화학공학을 졸업했으나, 이후 미국 유학시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North Carolina State University)에서 석사는 산업공학으로, 박사는 통계학으로 학위를 받았다. 당시만 해도 대학교 입시는 적성이 아닌 성적에 따라 정해졌으므로 그는 스무 살 이후에야 자신의 길을 찾아간 것.

 

“사실 고등학교 1∼2학년 때만 해도 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무조건 서울대 공대, 그 중에서도 화공과에 보내는 분위기였죠. 주변에서 모두들 강권하니 입학하긴 했지만 전공에는 도통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우연히 선택과목으로 들은 공정 및 품질관리에 큰 재미를 느꼈습니다.

 

 서울대에는 산업공학과가 없어 유학을 가며 산업공학을 지원해서 갔고, 거기서 부전공으로 통계학을 했는데, 아 그게 더 재미있더군요. 숫자에 불과한 데이터들이 정리하고 분석하면 정보를 변신하는데 그 과정이 정말 신기했습니다.”

 

박 원장은 전공을 계속 바꾸면서도 큰 어려움이나 지체 없이 학위과정을 마칠 수 있었던 비결로 ‘수학의 힘’을 꼽았다. 서울고등학교 재학시절, 전국에서 모인 수재들 틈에서도 자타공인 ‘수학 1등’의 왕좌(?)만은 놓치지 않을 정도로 수학을 무척 좋아했는데, 이러한 기본 실력이 다른 학문에서도 뛰어난 적응력을 발휘하는 밑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80년대 산업계 엔지니어들, 주경야독 하며 기술 익히는 현장을 함께 했다”

 

1975년 1월, 박사 학위를 받은 박 원장은 미시시피주립대학교(Mississippi State University) 경영대학에서 조교수로 통계학을 2년 반 가르치다 모교에 통계학과가 만들어지며 공채1호 교수로 부임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통계학을 공부한 사람이 거의 없어,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기업들로부터 강의와 상담 요청이 빗발쳤다. 국내 기업들은 통계적 품질관리나 공정관리에 대한 기술과 노하우가 전혀 없어 외국 회사에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며 초보적인 수치해석까지도 모두 의존하고 있었다.

 

“1980년대 중반이었죠. 한 정유회사에서 요청을 받고 방문했는데, 가서 보니 휘발유의 품질 유지와 관련한 모든 것들을 미국의 정유회사에 수백만 달러를 주며 지도를 받고 있더군요. 미국회사는 큰 틀이나 공식은 절대 전수해주지 않고 우리 기업이 질문하면 거기에 대한 답만 알려주고 있었죠. 그래서 이 회사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분석하여 여러 가지 입력변수에 따른 휘발유 품질 산출의 방정식을 만들어주었더니 굉장히 기뻐하더군요.

 

미국회사로부터 지도받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낳은 것은 물론이고요. 지금 우리나라 정유회사들의 품질관리는 아주 뛰어납니다. 당시 엔지니어들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쌓은 기술들이 있어 가능한 거죠. 기업들에게 강의 요청이 들어오면 무조건 밤이나 주말이었어요. 지금은 엄두를 못 낼 일인데, 당시 산업 현장의 엔지니어들의 열정은 아주 대단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끈 것은 그들 덕분이에요.”

 

“7년여 전부터 한림원 활동…독립성 유지하며 정부에 쓴소리 하는 기관 될 것”

 

박 원장은 국내 통계학 발전을 이끈 기초분야 연구자이긴 했지만 산업계에 필요한 응용연구에 집중했던 탓에 한림원과는 지난 2006년 회원으로 선출되면서 인연이 닿았고 이후 정책담당 부원장을 맡으면서부터 깊이 관여하기 시작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기초과학연구진흥법에 법정기구로 명시되어 있는 민간학술단체로서, 과학기술이 국정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1994년 설립됐다. 1954년 설립된 교육부 산하 국가기관인 ‘대한민국학술원’에도 유사한 기능이 있으나 이와는 별도로 과학기술분야에 전문화된 객관적인 연구, 평가, 자문 기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림원은 설립 당시 대한민국학술원의 기능과 운영의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정회원수를 최대 500명, 만70세 이하로 정해 다양한 과학기술분야의 젊은 학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한림원장 역시 임명직이 아니라 회원들이 투표해서 직접 선출해 독립성을 유지한다.

 

300년이 넘는 유럽의 한림원, 100년을 훌쩍 넘은 미국과 일본의 한림원에 비해 그 역사는 짧지만 현재 적극적인 국제 교류와 정책 제안 활동으로 국내외에서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특히 국제 교류 부분에서 주력하고 있는 것은 아시아과학한림원연합회(AASSA) 운영을 통한  과학기술 국제적 리더십 증진. AASSA는 지난 2000년, 우리나라가 주도적으로 조직한 기구로서 아시아 지역의 30개국 35개 한림원이 가입돼 있으며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안에 사무국이 있다. 일본이 주도한 아시아학술회의(SCA, 16개국 27개 단체)보다 회원수와 규모면에서 훨씬 크며, 유엔(UN) 산하의 세계 과학기술계 모임인 국제한림원위원회(IAP)에서 유일하게 공식 인정을 받았다.

 

박 원장은 “우리나라도 오랫동안 공적개발원조 (ODA) 지원을 받아온 경험이 있다”며 “이제 우리도 ODA를 통하여 개발도상국을 도와줄 차례가 되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아시아과학기술계를 대변하는 조직을 운영하다 보니 유럽과 북미의 선진과학한림원과의 교류도 보다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리더로 인정을 받는 거죠. 아무래도 일본과 달리 침략의 역사가 없다보니 아시아 내에서 우호적인 관계를 정립하며 조직을 이끌어나가는 것이 가능합니다.

 

지난번 브라질에서 개최된 IAP 총회에 갔더니 일본 대표도 드디어 AASSA 가입 의사를 밝히더군요. 하하. 앞으로도 KOICA 등과 연계해 과학기술 ODA 사업을 활발하게 펼쳐나가고 싶습니다. 개도국을 도와 줄 때 ‘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는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좋은 방법인데, 그러려면 과학기술 지원이 필수적이고 한림원은 우수 과학기술자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으므로 적극적으로 추진할 생각입니다.”

 

한림원이 국내 활동에서 주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역시 정책 제안이다. 특히 설립 초기부터 미국의 과학한림원(National Academy of Science, NAS)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는데, NAS의 경우 조직과 예산도 방대하며, 미국의 과학기술정책 입안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의 경우 NAS 운영기구가 굉장히 잘 조직화되어 있고 여러 재단에서 연구비와 기부금이 풍족하게 지원되는 것이 큰 특징입니다. 과학한림원, 공학한림원, 의학한림원 세 개 기관이 한 건물 안에 있는데 연구조직인 국가연구위원회(NRC)가 세 기관을 총괄해 연구 및 기부를 받아 배분하므로 서로 간에 역할이 분명하면서도 협력이 잘 되지요.

 

과학한림원장이 NRC 위원장을 겸임하는데, 4개 기관 인원이 1100여명에 연간 진행 연구가 200여건이 넘습니다. 워낙 재력가 재단의 기부문화가 활발하다보니 상당히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고, 미국 정부에서도 존중을 받습니다.”

 

박 원장에 따르면, 한림원도 한국연구재단을 통해 과학기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예산을 운영하므로 민간기구로서의 독립성은 지켜지고 있다. 다만 현재 국내에는 과학기술 관련 재단이 많지 않고 기부 문화가 활성화되지 않은 것이 아쉬운 대목. 그러나 박 원장은 이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우리나라도 차츰 그런 과학기술 지원 문화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011년 에스오일과학문화재단이 설립됐고, 얼마 전에는 10년간 총 1조5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인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도 운영을 시작했죠. 이들과 몇 차례 접촉이 있었는데 국제교류행사를 위한 심포지엄 지원에 긍정적인 의사를 밝혀왔습니다.

 

우리나라 기업과 국가 전체에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성숙되어 가고 있고, 수년 내 노벨과학상 수상자도 나오면 점차 무르익어 갈 것으로 보입니다.”

 

내년 20주년을 맞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국제교류와 정책활동에서 몇 가지 중요한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특히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해 전 세계 석학들을 초청하여 과학기술계 다보스포럼으로 만들고자 하는 ‘IASSF(Inter-Academy Seoul Science Forum:세계과학한림원서울포럼)’의 3차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고자 하며, 독일, 프랑스, 스웨덴,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과 양국 간 심포지엄 개최도 보다 확대할 계획이다. 또 지난번 한림과학기술포럼에서 'DMZ 세계평화공원을 활용한 남북한 과학기술 교류방안’을 다뤘듯 ‘급격한 통일에 대비한 과학기술의 대응 방안’이란 책자를 발간, 미래의 급격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정책연구도 활발히 진행한다.

 

적극적인 활동을 준비 중인 박 원장은 마지막으로 정부를 향한 제안도 잊지 않았다.

 

“과학기술을 국정운영의 중심에 놓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고위직을 임명할 때 인문사회와 금융계 위주가 아니라 과학기술을 아는 사람들을 채용하는 것에서 시작하면 가능합니다. 또 젊고 우수한 사람들이 과학기술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통령이 이를 강조를 해줘야 합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창조경제는 단기적으로 봐선 안 됩니다. 당장 산업화되지 않는다고 산업화될 수 있는 지식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안 되죠. 창조경제가 제대로 되려면 좀더 기초적인 연구에 더 많이 치중해서 투자하며 장기적으로 봐야 합니다. 초기의 기대처럼 최초의 이공계 출신 대통령으로서 과학기술 중심의 국정운영이 이루어지길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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