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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계 여성 리더 늘려야”…부러진 성장사다리 개선 촉구 본문
한림원, 9월 8일(화) ‘제167회 한림원탁토론회’ 온라인 개최
‘부러진 성장사다리, 닮고 싶은 여성과학기술리더가 있는가?’ 주제로 논의
우리 사회의 유리천장 문제 해결이 여전히 중요 과제로 인식되고 있는 가운데, 과학기술계에서 리더급 여성 과학기술인(이하 과기인) 양성과 산·학·연 전 분야에서의 여성 리더 활동 촉진을 위한 정책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 한민구, 이하 한림원)은 9월 8일(화) 오후 3시, ‘부러진 성장사다리, 닮고 싶은 여성과학기술리더가 있는가?’를 주제로 ‘제167회 한림원탁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한림원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온라인으로 생중계됐다.
토론회에서는 국내 여성 과기인의 생애주기별 연구 활동 및 일자리 현황을 살펴보고 현재 여성과기인 육성·지원 관련 정책의 실효성과 개선방안, 체계적인 역량 강화를 위한 제도 등에 대해 주제발표와 지정토론 등이 진행됐다.
김소영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와 문애리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장이 주제 발표를 진행했고, 지정토론에는 김상건 동국대학교 교수를 좌장으로 이광형 KAIST 교학부총장, 박문정 POSTECH 교수, 조현숙 전 국가보안기술연구소 소장, 이영숙 한국전력기술 인력개발원 교수, 장경애 동아사이언스 대표이사 등이 참석했다.
한민구 원장은 인사말에서 “인구감소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인재들을 활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라며 “특히 이번 토론회를 통해 여성 과기인들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조성과 문화 확산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전략이 제시되길 바란다”고 개최 취지를 밝혔다.
한편, 이번 토론회는 한림원에서 추진 중인 ‘여성과기인 성장사다리 강화 방안(연구책임자 유명희 KIST 명예연구원)‘ 정책연구의 일환으로 추진되었으며, 토론회의 논의내용을 반영하여 연내 연구보고서가 발간될 예정이다.
◆ 김소영 KAIST 교수, “여성 과기리더를 키우는 성장사다리 강화정책이 필요하다”
김소영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여성 과기인 성장 사다리 현황과 정책제언’을 주제로 발표했다.
김 교수는 정부의 오랜 노력으로 사회 전 분야에서 여성인재들의 진출과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과학기술 분야의 경우 아직 미비한 부분이 있다고 분석하며, 특히 여성리더 양성 부문에서 과기계는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공계의 경로를 추적해보면 과학기술계는 여성 뿐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안정적인 연구직을 잡는 것이 굉장히 힘든 분야”라고 전제하면서도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여성들의 경로 이탈 비율이 훨씬 높기 때문에 중견·리더급에서 활동하는 여성 과기인의 숫자가 매우 적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2018년 마무리된 3차 여성 과기인 육성계획에서 여성과기인 연구책임자 비율 목표를 15%로 제시했지만 결과는 10.2%에 그쳤다. 김 교수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원인을 여성과기인 양성에 대한 정책을 경력이탈 방지 차원에서 접근했던 것에서 찾았다. 그는 “경력이탈이나 단절의 문제로만 바라보면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며 “여성 과기인을 리더급 연구자로 키우는 ‘성장 사다리’를 놓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성장 사다리의 부실함은 통계에서도 드러났다. 2018년 기준 이공계 대학생 중 여성 비율은 자연계열이 49%, 공학계열이 21.7%였지만, 새로 채용되는 여성 과기인의 비율은 28.9%에 불과했다. 김 교수는 “대학 내 조교수로 승진하는 여성 과기인의 비율은 약 26%이지만, 정교수 승진은 14.4%로 더 낮다”며 “이공계 졸업 여성 과기인이 임원이나 최상급 관리자가 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개선 방안으로는 여성 과기인의 성장 토대를 키워 역량을 강화시킬 것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성장 사다리의 각 단계를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관련 중장기 전략 및 정책 과제를 도출해 궁극적으로 산학연 모든 분야에서 여성 과기인 리더가 확대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 틀을 마련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방안으로 신진연구자 연구활동 장기 지원사업 확대, 실험실 전문인력 트랙 정착, 육아휴직 대체인력 제도개선 등을 제안했다.
이어 그는 “성장사다리가 끝까지 튼튼한 구조를 갖기 위해서는 여성 과기인들의 리더활동을 촉진해야 한다”며 “과학기술계 여성기관장 임명을 확대하고 리더십 교육 및 멘토링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김 교수는 “기존의 제도도 실제 현장에 적용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문화 확산과 정책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며 “과학기술계 성인지 교육을 확대하고 기관 내 여성과기인 관련 조직 설치와 실적 모니터링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 문애리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장, “4차 산업혁명 앞둔 대한민국엔 여성 과기인의 활약이 필요하다”
문애리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장은 ‘여성과기인 지원 현황’에 대해 한국연구재단의 사례를 중심으로 주제발표를 진행했다. 문 본부장은 향후 10년 내 과학기술 인력 부족이 심화될 것으로 예견된 상황에서 여성 과기인 양성 및 활용 확대를 위한 정책이 반드시 필요함을 강조하고 현재 연구재단의 여성연구자 우대 정책의 내용과 성과, 향후 발전방안 등을 제언했다.
문 본부장 역시 여성 과기인들의 경력 이탈 비율을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 여성 과기인 숫자와 비율을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20대에 가장 많고 연령이 올라갈수록 가파르게 감소한다”며 “기업체의 경우 50대 여성 재직자는 약 4%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문 본부장은 “통계를 바탕으로 볼 때 여성 과기인들이 자신의 경력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 많은 제약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며 ““자연‧공학계열 전공 남성의 경우 30대 이후부터 50대 후반까지 약 90% 정도가 경제활동 참가를 통한 경력을 유지하는 반면, 여성은 30대부터 경제 활동 참가율이 떨어지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현상이 계속된다면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문 본부장은 “4차 산업혁명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인력의 수요가 증가해야 하는데, 현재는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인력 부족이 심화될 것으로 예견된 상황에서 여성 과기인 양성 및 활용 확대를 위한 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경제 활동 참여율이 남성과 같은 기준으로 높아진다면 국내 총생산이 14.4%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며 “지난해 한국은행도 한국의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을 OECD 평균인 64% 수준으로 높일 경우, 잠재 성장률 하락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예측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현재 한국연구재단은 여성 과기인 지원을 위해 연구 기회 확대 및 안정적 연구 환경 마련을 위한 선정 목표제를 도입하고 있다. 지난 2016년부터 시행해 온 여성 과기인 선정 목표제는 신규과제 예산 기준 20% 이상을 여성 과기인에게 배분한다는 제도다. 이 뿐만 아니라 출산과 육아에 친화적인 연구 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기간 연장을 확대해 연구 중단 및 경력단절을 방지하고, 신진연구 및 생애 첫 연구 지원의 자격 완화와 정당한 사유로 과제 중단을 인정하는 등의 지원을 통해 연구 환경을 재정비 하고 있다.
문 본부장은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시대로 변화하면서 과기인 모두가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유지하며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제도 확산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여성 과기인들에게 꼭 필요한 연구지원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다양한 지표를 활용해 정책을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여성 과기인의 고충 이해,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한 때다”
지정토론에서는 김상건 동국대 약대 교수를 좌장으로 이광형 KAIST 교학부총장, 박문정 포스텍 화학공학과 교수, 조현숙 전 국가보안기술연구소 소장, 이영옥 한국전력기술 인력개발원 교수, 장경애 동아사이언스 대표이사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대한민국 여성 과기인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이들을 위한 정책과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이광형 KAIST 교학부총장은 “현재 여성 과기인재를 지원하기 위한 여러 정책과 제도들이 있지만 출산과 육아 등으로 이탈하는 것을 방지할 만큼 충분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과기계는 여성 인재를 활용하는 것이 절실한 분야이므로 여성 과기인들을 지원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정책과 제도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부총장은 KAIST의 여성과기인 우대제도를 소개했다. 이 부총장은 “먼저 KAIST는 여성 교원 확보를 위해 신규 임용 교수 중 여성 비율 25%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또한 여성 교수들에게 국비장학생 인원을 추가로 배정하고 있으며, 여성 구성원들이 마음 놓고 학업과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교내 어린이집 운영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박문정 POSTECH 교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모든 과학자가 동등하게 대우 받는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리더급으로 올라갈수록 여성들이 적은 이유는 대형과제일수록, 개인과제일수록 심사나 평가 등에서 성별에 대한 인식이 적용되는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전제하며 “가산점 등 여러 우대정책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여성과학기술인들이 경력에서 이탈되는 것은 남성 중심의 연구문화에서 정서적인 문제를 겪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리더의 자리에 여성과기인을 선정하고 그 이유를 ‘우수해서’가 아니라 ‘여성 비율을 맞추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문화는 문제가 있다”며 “여성이기 때문에 선택됐다는 결론은 사명감을 안고 연구를 하고 있는 여성 과기인들의 사기를 저하시킨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박 교수는 “선진국 수준의 양성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성 과기인들이 자신의 능력에 대해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문화를 형성을 해야 한다”며 “사회분위기는 파격적인 정책으로 단기간에 바뀌기는 어렵기 때문에 10년 후, 20년 후를 바라보고 장기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현숙 전 국가보안기술연구소 소장은 여성 과기인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 중 하나로 육아에 대한 불균형적인 책임과 부담을 꼽고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그는 “이와 관련 많은 정책과 제도가 마련됐으나 실질적인 대안이 되지 않았기에 많은 여성 과기인들이 여전히 육아와 연구를 병행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전 소장은 “보다 적극적이고 획기적인 정책이 수반되어야 한다”며 “출연연이나 정부 기관은 정부의 지침을 최대한 준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향이 크며, 이러한 기관들을 대상으로
현실성 있는 정책과 제도를 먼저 실행한 뒤, 확대해 가는 방안으로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영옥 한국전력기술 인력개발원 교수는 기업에 특화한 여성 과기인들의 성장 사다리를 분석했다. 그는 “기업에서 여성 재직자들이 최고의 리더 자리에 가기 위해선 작은 모임에서부터 리더가 되는 것이 중요한데 여성은 결혼 시기가 늦어지는 사회적 현상과 첫 단계부터 남성과의 경쟁에서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사회의 불평등한 환경으로 인해 여성이 자력으로 최고의 리더 자리에 올라가는 경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의 말에 따르면 보통 초기 리더가 된 후 10년이 지나면 팀 리더로 발탁이 되는데, 이 시기에 대체로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2배 가까이 벌어진다. 이 교수는 “리더 발탁 시 여성들이 갖고 있는 장점을 충분히 반영하는 기준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며 “남성들은 인적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능력이, 여성들은 주어진 목표에 대한 강한 책임감과 노력이 강점이므로 이러한 특성을 감안해 인재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려는 정부와 기관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장경애 동아사이언스 대표이사는 사회적 변화가 무엇보다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장 대표는 “영국의 여성 과기인 비율이 높은 것은 오랜 시간 동안 문제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고, 사회적으로 논의를 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단기간에 남녀 연구자에 대한 인식을 바꿔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변화를 향한 발걸음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변화를 위한 노력의 첫 단계로 말과 글에 예민해지는 것을 꼽았다. 그는 “한 사람의 생각은 말로 드러나고, 말이 바뀌면 행동과 습관, 문화를 변하게 할 수 있다”며 “밖으로 드러나는 첫 단추인 말과 글에서부터 세심한 배려를 하고 우리의 말과 언어에 가치를 담을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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