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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연구’를 위한 정책과 제도④ 융합연구와 활성화를 위한 정책방향 본문
[융합연구와 활성화를 위한 정책방향]
‘융합연구는 지속가능한 연구생태계를 통해 위대한 성과를 창출한다.’
글. 최종화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신산업전략연구단장
왜 융합해야 하는가 – 새로운 르네상스시대
세계경제는 급속한 산업성장의 시대를 지나 새로운 발전모델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대로 전환되고 있다. 이는 2000년을 기점으로 기존 발전모델이 창출할 수 있는 부가가치의 한계를 체감하며 융합을 통한 새로운 가치의 생성을 지향하는 경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환은 다양한 학문, 기술, 산업간 전방위적 융합을 추구하며 복잡한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해 분절화된 지식체계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新경제 페라다임의 부상으로 이어졌다. 이는 융합연구의 개념을 촉발시킨 M.C.Roco의 보고서에서(NSF, 2020) “과학의 융합이 물리적 세계에 대한 통합된 이해를 기반으로 새로운 르네상스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다.” 말과 일맥상통한다. 르네상스시대, 철학자이자 공학자이자 화가였던 미켈란젤로가 그러했듯 문제해결을 위해 출발점이 하나였던 학술(學術)의 개념과 같이 말이다.
이러한 융합적 역량은 다양한 측면에서 우리사회에 필수적인 것이 되고 있다. 이광호(STEPI,‘20)의 연구에 따르면 첫째 국가적차원으로, 국가혁신시스템 (National Innovation System)상 혁신주체간 연계를 통해 기존의 선형적 발전모델을 넘어서야 한다는 측면에서 융합은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산업적 차원에서 산업간 경계가 와해됨에 따라 이종시장의 경쟁요소를 모두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곧 경쟁력이 되고 있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셋째로 기업측면에서, 가속화된 디지털전환 환경 하에 생존을 위해 이종분야 지식·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중요하게 지적하였다. 마지막으로 연구자 차원에서는 기존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고 기술적 난제에 도전하기 위해 융합적 (inter- discipline)접근이 필수적인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들고 있다.
한계와 지향점 – 인간, 협력, 임무
앞서 설명한 측면에서 우리는 융합연구의 지향할 바를 위해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의 융합연구정책은 융합연구 개념을 초기에 제시한 미국 모델을 참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결과, 우리는 아직까지도 기술간 융합 중심의 정책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접근은 대상을 융합하는 ‘결과적 융합’의 차원으로 그 개념을 크게 축소하게 되었다. 하지만 융합은 수단으로써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주체간 융합을 지향하는 ‘과정적 융합’을 통해 더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이는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인류지식의 총체적 활용을 지향하는 융합의 본질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우리사회가 앞으로 지향해야하는 융합의 지향점을 다음의 세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① 인간을 돕는 기술 ‘인간지향’
본래 인문학은 ‘인간 및 인간 삶의 근본적인 문제들과 관계된 학문’으로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논하는 인문학은 ‘인간 및 인간의 문화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다루는 학문이자 활동’으로 보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행하여 온 융합연구는 과학기술과 인문분야가 큰 벽을 쌓고 쉽게 융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융합연구는 인문과 기술의 융합을 통해 인간에게 필요한 지식의 산물이 되어야 한다. Midea사의 ‘소서러’라는 밥솥은 밥솥이 전달하는 가치가 인문적 속성과 융합되면서 가치가 전환된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밥을 맛있게 지어주는 것이 본질인 밥솥의 가치를 소리 없는 밥솥을 고안함으로써 ‘시끄럽고 성가신 밥솥’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밥솥의 기존 본질을 인간에 대한 심리적 이해와 결부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를 전환하였다는데 의미가 있다. 이렇듯 인간을 지향하는 융합은 기술환원적 사고의 틀을 깨고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지식으로써 거듭날 수 있다.
② 인류의 번영의 근원 ‘협력’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 표현하였다. 인간은 곧 사회의 지식이며 사회공동체의 형성자(形成者)라는 의미이다. 이렇듯 인간은 서로 협력하여 공동체의 번영을 추구하는 존재적 본질을 가지고 있다. 융합연구 또한 같은 맥락에서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복잡한 문제 해결을 위해 다학제적 지식의 주체가 계층과 경계를 넘나들며 협력하는 것, 이것이 두 번째 융합연구가 지향해야 할 바라고 하겠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협력에 대해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과거의 연구에서 융합연구를 표방하는 조직 혹은 연구자가 사실 서로 협력하지 않는 경우가 있음을 확인했다.(STEPI,‘17) 이는 거짓 융합연구여서가 아니었다. 융합연구는 연구의 단계에 따라 혹은 연구의 목적, 주제에 따라 서로 협력하는 방법, 시점, 내용, 강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잘 이해하고 접근한다면 융합연구는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해법을 창출하는 요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③ 오염된 문제, 본질을 바라보는 힘 ‘실용’
융합연구는 무엇보다도 더 높은 문제해결력을 확보한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이러한 의미는 실제적 문제의 해결이라는 측면에서 ‘실용적’이라는 의미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융합연구가 지향해야 하는 세 번째 방향성이다.
루터란 종합 어린이 병원의 MRI 혁신사례는 이러한 융합의 문제해결력과 실용에 대해 잘 설명해준다. 이 사례는 폐쇄적 MRI에 공포심을 느낀 어린환자들에게서 발생하는 촬영시간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이를 의뢰받은 필립스사는 엔지니어들의 의견에 따라 MRI소음이 원인이라고 판단하고 무소음MRI개발로 방향을 잡았으나, 추후 외부 다학제전문가의 컨설팅을 통해 환자의 공포심이 ‘MRI에 대한 無경험이 주는 두려움’이라는 것을 밝히게 된다. 결과적으로 MRI체험실을 설치하고 인형으로 모의MRI 놀이 경험을 제공한 후, 본 MRI촬영에 임하도록 프로세스를 혁신하여 해결하였다는 것으로, 새로운 문제해결방법의 마련이라는 측면에서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실용을 지향하는 융합은 실제로 동작하는 해법(Solution)향해 천착하게 하는 동력이 되며, 이 과정에서 오염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여 연구가 지향하는 목표와 예상성과를 명확하게 한다.
특수성과 활성화를 위한 정책방향
앞서 설명한 지향점을 향해 융합연구가 활성화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를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이후부터는 오랜 융합연구를 경험한 연구자들과의 인터뷰과정에서 파악한 융합연구의 특수성과 이를 위한 정책방안 몇 가지를 나누고자 한다.
① 협력의 대상을 찾는데서 출발
한 출연연의 융합연구사업 책임연구자와 인터뷰한 일은 융합연구가 가지는 매우 중요한 특성 중 하나를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그는 인터뷰에서 20년 넘게 융합연구를 수행하며 가장 어려웠던 일이 ‘협력하고자 하는 융합연구자를 찾는 것’이라고 했다. 수 많은 연구자를 만나서 함께 연구하고 신뢰할 수 있는 동료연구자로 거듭나는 과정은 융합연구에서 더욱 중요한 것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신뢰할 수 있는 연구자의 네트워크 또한 신뢰하게 되는 더 큰 통합이 이루어진다는 말도 함께 언급했다.
이러한 점은 융합연구에서 협력할 대상을 식별하고 이를 검증하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지금의 규제를 완화하여 협력대상의 탐색을 위한 공공데이터의 이용확대와 상호 교류를 위한 전자적 플랫폼과 사업관점의 교류프로그램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② 최적의 협력방법을 통해 활성화
융합연구는 연구가 지향하는 목적, 분야, 연구단계 등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협력방법과 수단, 내용, 강도 등이 달라질 수 있음을 앞서 설명하였다. 특히 기초단계에서는 사실상 개별연구에 가까운 느슨한 협력구조를 따르다가 응용개발단계로 접어들면 강한 협력구조로 전환하는 등 필요에 따라 최적의 협력방법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는 융합연구를 위해 다양한 학제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력하는 과정에서 이론적, 물리적, 정서적 등 모든 측면에서 이질감과 불편사항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협력옵션을 제공하는 것은 필수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이슈는 다양한 유형에 따라 방법을 규정하는 방향이 아닌, 개방형 협력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과 수단을 제공하고 연구자가 선택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열어주는 방향이어야 할 것이다.
③ 네트워크 성과를 바탕으로 지속
통상적인 연구과제의 평가는 연구과제가 산출한 직접적 성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융합연구에서 또한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 성과는 주로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논문, 특허와 같은 정량성과를 중심으로 측정되곤 한다. 하지만 융합연구에서는 연구자체가 주는 성과 못지 않게 그 연구를 통해 잔류되는 연구자의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한 성과가 되어야 한다. 이는 융합연구의 활성화를 위해 우리가 노력하는 본질적 목적이 능동적으로 동작되는 융합적 연구생태계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이를 위해서 융합연구의 평가는 해당 과제가 종료된 이후 해당과제의 참여했던 연구자들이 함께 또 다른 연구 즉 공동논문저술, 과제공동참여, 공동특허 및 사업화 등의 활동으로 지속되는지를 추적조사하고 평가에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융합연구정책의 완성을 바라며
지금까지 융합연구가 왜 중요하며 무엇을 지향해야 하고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현재 우리는 앞서 다룬 모든 일들을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추진하기 위해 그 기반이 되는 법제도적 틀을 완성하여야 하는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조속히 과학기술기본법에 임시적 체계로 유지되고 있는 현재 융합연구정책의 기반구조를 탈피하여, 융합연구에 필요한 실질조항을 담은 법적 기반을 확립하기를 기대하며 본 기고를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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