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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 파수꾼이 된 과학자, “한 명씩만 교육시켜라…대한민국이 달라진다” 본문

한림원 사람들/회원

호밀밭 파수꾼이 된 과학자, “한 명씩만 교육시켜라…대한민국이 달라진다”

과기한림원 2015. 4. 24. 11:19


[행복 세상 만드는 과학자①]
정길생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이사장 (제 6대 원장), 참행복나눔운동 이사장
고비마다 날 잡아준 사람 덕에 성공
평생의 부채의식 이제 나눔으로 실천
돈보다 희망과 정을 나누는 방식
"과학자와 소외계층 중매자 역할 중"

 

 

“내 생애 18일간 등을 바닥에 안 대고 실험실에 앉아 있었던 적이 있어요. 며칠간 밤을 샜는데 잠도 오지 않았고, 당연히 집에도 안 갔죠. 1960년대 초반에 세계적으로 화제가 집중됐던 연구는 수정능획득(capacitation) 인자를 알아내는 거였는데, 어느 날 그걸 찾아 낸 거지. 무언가 나올 것 같으니 눈이 번쩍 뜨이면서 엄청나게 흥분됐죠. '아 이제 내가 세계적인 석학이 되는구나' 싶었고, 미국이든 일본이든 학회나 강의에서 내 실험데이터를 보여주면 다들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최고’라고 해줬어요. 과학자가 새로운 발견을 했을 때, 그 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을까? 그때가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죠.”

 

이야기를 하는 정길생 참행복나눔운동 이사장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목소리는 크고 빨라졌으며 허리는 곧게 펴졌다. 반세기 전의 일이 마치 어제 일인 것만 같았다.

 

“언제 가장 행복했느냐”에 대한 대답이 말해준 건, 그는 천생 과학자라는 사실이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 4월 21일 '제48회 과학의 날'을 맞아 과학기술유공자에 대한 훈포장을 수여했다. 이날 정길생 이사장도 과학기술 훈장을 받았다. 무게감 있는 수상경력이 말해주듯 그는 과학기술자로서 뛰어난 업적을 쌓았다. 연구자로서는 1983년 국내 최초로 수정란 이식 기술을 도입해 한우의 젖소 송아지 출산을 성공시켰으며, 역시 국내 최초로 사람의 정자와 난자를 실험관에서 수정시켜 생명을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또 건국대학교 총장,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세계축산학회 이사, 아시아동물생명공학회장, 과기처 생명공학연구기획단장 등 과기계 리더(leader)로서의 역할도 훌륭히 해냈다.

 

그런 그가 최근 두 팔을 걷어붙이고 사회 속으로, 그 중에서도 소외계층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참행복 나눔운동’라는 단체를 만들어 보건복지부 산하에 정식으로 법인도 냈다. 원로 과학기술인들을 비롯해 400여명이 참여 중인 참행복 나눔운동은 모금활동이 없다. 돈이 아니라 시간과 재능, 자산의 일부 등을 기부하는 형태다. 얼핏 들으면 그냥 ‘돈을 안 쓰는 것’처럼 생각되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돈보다 값진,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것’을 나누는 일이다.

 

정길생 이사장을 만나 ‘참행복 나눔운동’의 탄생과 배경, 계획 등을 상세히 들어 봤다. 


 “개천에서 난 용?…철들고 보니 주변에 많은 빚을 진 사람일 뿐”

 

“사람들이 날 보고 똑똑하다며 개천에서 난 용이라고 했어요. 그 얘기 들으며 젊을 때는 사실 어깨가 으쓱했지요. 그런데 철이 들고 보니 옳은 말이 아니에요.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만 봐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도 나보다 머리 더 좋은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럼 내가 그들보다 더 노력했느냐? 그것도 아니더라고요. 나보다도 훨씬 더 혹독하게 노력한 친구들도 많았죠. 그런데 때로는 나보다 똑똑하고 더 노력한 친구들도 어쩔 수 없이 중간에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들을 맞는데, 나는 그 위기를 넘겼어요. 그건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되돌아보면 내 인생 고비 고비마다 반드시 누군가가 나타나서 내가 주저앉지 않도록 날 붙들어줬어요. 아무 조건 없이 사랑을 베풀어준 사람도 있었죠. 서른이 넘어서야 그걸 깨달았죠. 난 다른 사람보다 빚이 많은 사람이구나.”

 

많이 알려져 있듯 정길생 이사장은 경남 산청 산골마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다들 못 살았던 시절 그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안이었다. 일곱 남매 중 가장 똑똑하다는 이유로 여섯째였던 그 혼자 학교를 다녔다. 건국대학교 축산학과에 진학한 것은 학비는 물론 생활비 지원과 성적 우수생에게는 유학까지 보내준다는 조건 때문이었다.

 

정길생 이사장은 “내가 잘해야 나를 도와준 사람들이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 교육이며 연구며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며 “좋은 결과를 내는 것만이 보답할 길이었다”고 말했다.

 

대학교수가 되며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자 그는 연구 성과 외의 방법으로도 ‘부채(負債)’를 갚아나가기 시작했다. 제자들을 챙기는 것이 시작이었다. 교수가 되고 난 이후에도 한참을 전세를 돌며 살았는데 내 집 마련보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등록금을 일부라도 대주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또 제자들의 고민을 잘 들어주고 조언해주는 교수로 소문이 나서 그의 방엔 항상 학생들이 북적였다. 졸업생 취직을 시키기 위해 회사들도 많이 찾아다녔다.

도와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쪽으로 움직이던 그가 보다 본격적으로 자신이 받은 것을 다시 사회에 환원해야 된다고 결심한 것은 과학기술한림원 원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다.

 

“한림원 원장은 보수가 없는 직책이지만, 학자들이 직접 뽑아준 명예로운 지위입니다. 그만큼 봉사해야 하는 자리기도 하고요. 원장이 된 후 곰곰이 되돌아보니 60년간 은혜를 받아 지고 있는 빚이 아주 많은데 그만큼 되돌려주지 못하고 있다는 다급함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행동에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쯤, 과학계 훌륭한 어

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시더군요. 교육부 장관을 역임하신 조완규 전 서울대 총장님, 김시중 전 과기부 장관님, 김우식 전 부총리님 등이 취지에 동감하고 함께 해주셔서, 내 마음 속에 항상 도사리고 있던 초조함을 없애고자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됐죠.”

 

"과학자들, 청소년에게 과학의 꿈 심어주는 게 실험만큼 중요한 업무다"

 

한림원 원장 시절의 구상이 실체로 나타난 것이 바로 ‘참행복 나눔운동(이하 나눔운동)’이다. 나눔운동은 먼저 ‘조건 없는 나눔이 행복의 첫걸음’이라는 인식의 확산을 위한 ‘참행복나눔포럼’을 진행 중이다.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연사들이 나눔을 통해 얻은 행복담을 일반 시민들과 나누며 참여를 늘려 나가는 사업으로 김영길(75) 전 한동대 초대 총장, 박청수(78·사진) 원불교 교무 등이 강연에 나섰다. 서울본부, 경기인천지부, 충남대전지부, 경남부산지부, 경북대구지부, 전북전주지부, 전남광주지부 등 지역 거점을 마련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운동을 전개하고 있.

 

포럼이 나눔의 정신을 전파하기 위한 운동이라면, 1:1 멘토링 사업은 실제로 조건 없는 베품을 실천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최근 기업을 운영해 경제력을 갖춘 독지가가 나타나 사재(私財)를 쾌척했고 이를 바탕으로 50쌍의 멘토-멘티를 선정,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선정된 50명의 멘티들은 소외계층의 청소년들이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외국인이 아니에요. 우리 국민이에요. 그런데 이 애기들의 고교 진학률이 30%가 안 된다고 합니다. 2030년이 되면 320만 명을 넘어선다고 하는데, 이 아이들이 마음에 상처와 분노, 외로움을 가지고 자란다면 그것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큰 불행입니다. 1:1 멘토링 사업은 이 아이들에게 단 한 명의 ‘아껴주는 사람’이 되어주는 겁니다. 가정이며 학교에 방문해서 관심을 가져주고, 같이 밥도 먹고, 아이들이 밖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손을 잡아줘야 합니다.”

 


정길생 이사장은 이들을 애정 어린 목소리로 ‘우리 애기들’이라고 부르며 특히 과학기술자들이 이들을 돌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젊은 청소년들에게 과학인재의 꿈을 심어주는 것에 국가의 명운이 달려있습니다. 과학기술은 국가의 기반을 다지는 작업입니다. 그렇다면 이걸 누가 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과학기술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플라스크 들고 실험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업무죠. 우리나라에는 한림원 회원들을 비롯해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석학들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이 한 명씩만 교육시켜보세요. 대한민국이 달라집니다.”

 

그는 “실험실 한 곳에서 한 명을 매주 불러서 교수와 함께 점심 먹고, 대학원생들이 과외해주면 아이들이 꿈을 갖게 된다”며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경험은 대학원생들에게도 큰 교육이 된다”고 역설했다.

 

많은 과학기술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그는 과학자와 소외계층 청소년 사이의 중매자역할을 자처했다. 또 최근 주요 대학 총장들을 설득, 각 대학이 1:1멘토링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추진하는 협의체를 만들고 있다. 그는 전국에 있는 수만 개의 연구실에서 1명씩만 맡아도 거국적인 청소년 지원 시스템이 가동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나눔운동에 100만 명의 회원을 참여시키는 게 목표”라는 정길생 이사장은 한림원을 향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한림원에는 3가지 중요한 과제가 있다”며 “기초과학을 튼튼하게 만들고, 해외 네트워킹을 통해 국제무대에서 우리나라 과학기술 위상을 높이고, 정부로부터 경제적 자립을 통해 독자성을 갖춰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어 그는 “현재 한림원이 그런 방향으로 잘 나아가고 있다”며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참 행복을 나누기 위해 노력하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정말 자신 만을 위한 시간은 없는지 물었다. 처음과 달리 목소리가 낮아졌고, 조심스러웠다.

 

“일생동안 병마에 시달렸고, 당장 먹고 사는 것을 고민하느라 너무 고달팠고, 어떻게든 칭찬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개인적으론 너무 삭막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다시 태어나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고,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기들을 보면 ‘저 아이가 내 나이가 될 때까지 얼마나 고생할까’ 싶어 문득 측은함이 들 때도 있습니다. 최근에 사진촬영을 합니다. 사진을 통해서 삶을 정리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주로 인물사진을 찍고 있어요. 나도 한 가지 신나는 일은 있어야죠.”

 

빛이 충분해야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그림자 없이 빛만 가득한 사진은 감동이 없다. 뛰어난 과학기술자로서 많은 조명을 받았지만, 그 그림자 속에 개인의 희생과 고난을 감췄던 정길생 이사장의 인생이 사진에 담긴다면, 누구나 곁에 두고 위안 받고 싶은 매우 감동적인 작품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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