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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믹 캐피탈리즘, 대학의 존재 이유를 묻다 본문
과기한림원, 23일 페이토호텔에서 ‘제131회 한림원탁토론회’ 개최
‘아카데믹 캐피탈리즘과 책임 있는 연구’ 주제 과기정책 논의
[제131회 한림원탁토론회 단체사진]
특허권, 스핀오프기업, 산학협력 등 대학연구의 상업화가 지식 생태계에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과학기술정책전문가들이 연구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방안 논의에 나섰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 이명철·이하 한림원)은 11월 23일 오후 3시부터 서울 양재동 페이토호텔에서 ‘아카데믹 캐피탈리즘과 책임 있는 연구’를 주제로 ‘제131회 한림원탁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박범순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홍성욱 서울대학교 교수 등 2명의 주제발표가 진행됐다.
대학의 시장지향적 행위를 지칭하는 ‘아카데믹 캐피탈리즘(Academic Capitalism, 학문 자본주의)’은 20세기 초·중반 대공황과 불황을 겪으며 미국의 대학들이 자구책을 마련하며 시작한 행위로, 현재는 그 개념이나 구성요소에 대해 많은 관점이 존재한다.
특히, 대학의 연구결과로 인한 이윤의 배분 문제가 논란으로 점화되면서 이에 대한 심층적 논의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유욱준 한림원 총괄부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첨단 기술들이 대학의 연구를 토대로 창출되고 대학들이 이런 연구의 사업화를 장려하면서 이에 따른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며 “아카데믹 캐피탈리즘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을 모두 짚어보고 향후 대학의 학문적 연구결과를 어떻게 산업과 연결해야 되는지에 대한 중요한 지표를 도출하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토론회의 취지를 강조했다.
◆ “대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
먼저 박범순 교수는 ‘미국 아카데믹 캐피탈리즘의 역사와 현황’을 주제로 대학연구의 상업화가 지식생태계 구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먼저 총장 로비, 특허소송, 연구윤리·진실성 조사, 대학원 노조 등 최근 하버드대학에서 일어난 4가지 사례를 통해 대학을 둘러싼 환경이 변화하고 있음을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이전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최근 벌어졌는데, 이는 대학을 둘러싼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기존의 대학들이 혁신대학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명문대학인 하버드대학이 기술혁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 교수는 “지식의 상업화와 상품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보상이 크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혁신 활동을 통해 국가에서 받는 연구비가 많아지면, 그만큼 긍정적인 이미지가 커지고, 그에 따라 기부금액도 올라간다는 얘기였다. 이는 곧 대학의 사회적 위치와 기능이 상승하는 효과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자본주의가 대학의 성격을 바꾸고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100년 전부터 미국에서는 활발히 논의되어 왔었고, 최근까지도 대학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범순 KAIST 교수]
그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1980년대 이후 대학에 기술이전 전담부서와 연구윤리전담부서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다. 박 교수는 “단순한 우연은 아니다”라며 “아카데믹 캐피탈리즘과 책임 있는 연구가 같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러한 사회적 구조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개인의 윤리적, 도덕적인 문제로 환원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많다”라며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로 환원시키기엔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고, 국가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도 면밀히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박 교수는 “국가와 시장과 대학 사이의 관계가 밀접해진 상황에서 긍정적인 시각은 물론,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며 “아카데믹 캐피탈리즘을 잘 이해하면 책임 있는 연구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 역시 우리가, 또는 대학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성찰해봐야 할 시점이라는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대학의 정체성을 새롭게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홍성욱 교수는 ‘우리나라 아카데믹 캐피탈리즘과 사회에 책임을 지는 과학 연구’를 주제로 국내 대학의 상업화 역사와 과정, 관련 제도 등을 분석하는 한편, 아카데믹 캐피탈리즘으로 촉발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홍 교수가 들고 온 질문은 ‘어떻게 연구가 대학에 돈이 되는가’였다. 그는 질문에 대한 답을 ‘간접비’에서 찾았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오버헤드, 즉 간접비라고 부르는 이 비용이 대학의 재원이 되는 형식”이라며 “대학은 간접비를 어떻게든 높여서 받으려고 하고, 정부는 어떻게든 깎으려고 하는데, 이런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간접비는 30~40% 선에서 책정이 된다. 한국 대학에서 1년간 사용하는 간접비의 총액이 7,000억 원 정도로, 상당히 많은 예산이 대학에 간접비로 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대학이 이것을 수입원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홍 교수는 “국가 R&D 연구비 1.5조 원 중 절반을 상위 10개 대학이 독식하고 있다”라며 “대학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지면서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하는 대학들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산학협력단의 수익 구조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홍 교수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대학의 산학협력단 수익은 8조 6,000억 원 정도다. 이 중 90.2%가 정부 보조금이고, 9.8% 정도가 산학협력에서 얻은 수익이었다. 게다가 이 9.8%의 산학협력 수익 중에서도 지적재산 운영 및 이전과 관련된 수익은 6%에 불과했다.
[홍성욱 서울대 교수]
그는 “한국 대학이 미국 대학과는 달리 특허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이 굉장히 적다는 것을 의미하는 지표”라며 “대학의 기술이전 건수와 기술료는 계속해서 증가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연구비 중에서도 특허화해서 받는 기술료는 1%에 불과하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일침 했다.
이어 홍 교수는 지식의 상품화가 연구 윤리에 부작용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대학 교수가 자유로운 연구자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라며 “대학 교수는 학생, 학과, 대학, 사회에 대한 의무가 있으며, 이윤추구 활동이 이런 의무에 저촉되지 않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교수들의 창업을 권장하지만, 활동의 유예기간 후에 선택을 하는 방식으로 교칙 겸직 규정을 개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대학이 사회를 위해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전파하는 기관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건전한 지식 생태계 관리는 학문 공동체의 역할”
주제발표 이후 이어진 지정토론에서는 정선양 건국대학교 MOT밀러스쿨 원장을 좌장으로 문환구 두리암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 오철우 한겨레신문 기자, 이두갑 서울대학교 교수, 이공래 DGIST 교수, 이태억 KAIST 교수 등이 참여해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토론의 핵심은 대학의 상업적 가치 추구가 건전한 학문 생태계를 영위하는 데 있어 위협으로 작용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오철우 선임기자는 한국 연구역량의 양적 성장에 비해 국내 연구중심대학의 제도와 장치는 책임 있는 연구 문화와 거리가 멀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는 최근 파문을 일으킨 이른바 ‘와셋(WASET)’ 사태를 거론하며, “부실한 학회 활동이 일부 연구자들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널리 퍼져 있었던 것이 뒤늦게 알려졌고, 이런 사태가 학계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제기됐다는 점에서 학계의 자발적인 자정 능력에 문제가 없는 것인지를 되묻게 한다”고 일침 했다.
또한, 오 기자는 “건전한 학문 연구 생태계를 관리하는 일은 사회에 기여하는 학문 공동체의 책임 있는 역할”이라며 “필요할 때 ‘사이렌’을 울릴 수 있는 기능이 학계 내에서 의식적으로 활발히 진행되어야 사회적 신뢰도도 높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거대해진 ‘기업가형 산단-대학 체제’에 대해 이제는 대학이 한 번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라며 “대학 본연의 가치를 되묻고 그것을 살리려는 산단-대학 체제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이태억 KAIST 교수는 대학의 과학기술 연구가 지나치게 상업적 가치를 추구하게 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폐해에 대해 경고했다. 이 교수는 “이공계 대학에서 연구의 상업적 가치 추구는 불가피한 일면이 있지만, 과학기술의 파급력이 산업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환경, 생활,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에 윤리적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며 “치명적 가습기 살균제 연구, 줄기세포 연구결과 왜곡 등 근래 언론에서 보도됐던 다양한 불공정한 연구사례들이 끊이지 않고 있고, 또 공사 구분을 명확히 하지 못하는 연구자도 많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그는 “연구 공정성 및 윤리성은 연구비 수주 및 관리 과정, 잘못된 평가 체제, 지나친 실적 압박 등도 개선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를 처음 배우는 대학원에서부터 연구자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을 해나가야 공정한 연구 문화와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이공계 교육 및 연구에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문화를 조성하고 관련 교육 및 훈련을 강화해 연구평가 체제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공래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초빙교수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앞둔 지금 대학의 기업가적 역할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피력했다. 이 교수는 “시대가 변화해 오면서 대학은 교육형 대학에서 연구형 대학으로, 현재는 기업가적 임무가 중시되는 기업가형 대학으로 역할이 변화해 가는 중”이라며 “지식이 자본으로 작동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대학의 기업가적 역할이 경제사회발전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설파했다.
이어 그는 “경쟁과 재정의 독립성 유지는 국가의 고등교육시스템 작동을 위해 필수이며, 시대의 요구뿐만 아니라 대학 자체의 재정적 존립을 위해서도 아카데믹 캐피털리즘 현상은 필연적”이라며 “현재 우리나라 대학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을 대폭 확대하고, 학생들의 기업가정신 교육을 강화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고 주장했다.
이두갑 교수는 최근 한국에서 논의된 서울대와 툴젠의 특허권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그는 “2011년 미국 대법원에서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은 연구자라 할지라도, 그 발명의 권한이 우선적으로 발명자에게 있음을 명시한 판결을 내린 상황에서 한국이 이러한 법적 판결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을 것 같다”라며 “어떤 법적, 정치경제적 맥락에서 공공투자 기반 연구 성과의 지적 재산을 대학에 양도하려고 했는지, 그 논리는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이 교수는 “한국의 정부와 대학은 공공투자 기반에 의한 연구 성과의 지식재산의 경우, 직무발명과는 다르게 공공기금에 기반한 발명자의 법적 소유권을 최우선하는 것이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는 것인지, 혹은 그렇지 않은 다른 정책적 판단과 대안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공공 정책적 차원의 토론을 수행해야 한다”라며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연구자가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연구를 확산할 수 있도록 장려해줄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환구 변리사 역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서울대와 툴젠의 특허소유권 다툼은 국가연구개발과제로 수행한 연구결과에서 얻어지는 특허권의 소유문제까지 얽혀있는 복잡한 사안”이라며 “문제는 단계별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며,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결과물인 특허의 소유권을 누가 가질 것인가를 우선 정한 뒤, 소유권을 갖게 된 해당기관에서 직무발명 규정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고 말했다.
[지정토론]
해당 사업은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지원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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