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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보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힘…회원 참여 활성화 목표" 본문
[한림원이 만난 사람]이명철 신임 과기한림원장
핵의학 개척한 거두에서 병원 경영자까지 평생 도전인생
"평생 아는 것보다 '하는 것이 힘이다'라는 철학으로 살았습니다. 또 같이하면 혼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할 수 있으므로, '함께 하는 것이 힘'이고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신념을 펼쳐왔습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서도 마찬가지로 훌륭한 분들을 집행부로 구성해 복수지도체제(Multiple Leadership)로 운영할 계획이고, 저는 많은 석학 분들이 참여하도록 하는데 집중할 생각입니다. 한림원이 발전하고 위상이 강화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분야에 기여하신 석학회원들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박성현 원장님이 2014년에 창립 20주년을 준비하시며 미션과 비전을 굉장히 잘 수립해주셨습니다.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차기 원장으로서의 목표이자,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신임 원장에 이명철 국군수도병원장이 선출됐다. 지난달 26일 정기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인준되었다. 임기는 2016년 3월 1일부터 2019년 2월 28일까지 3년이다
이명철 원장은 한국 핵의학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거두로 꼽힌다. 이 원장은 동위원소 분야에서 전일제 근무를 한 국내 1호 의사이며, 핵의학계의 숙원사업이었던 핵의학전문의제도를 도입하는 산파 역할을 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세계핵의학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국제원자력기구(IAEA), 미국핵의학회(SNM), 세계핵의학회(WFNMB) 등으로 구성된 국제협렵위원회(Global Cooperative Council)을 운영, 전 세계 핵의학 관련 활동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성과를 냈다. 2012년에는 31년간 몸담은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떠나 가천대 길병원장 및 가천대 메디컬캠퍼스 부총장으로 취임, 연구중심병원 선정과 가천뇌융합과학원 개원을 이끌었다. 2014년에는 군 의료체계 혁신을 목표로 민간인 최초 국군수도병원장에 취임했다. 올해 3월이면 '의학자 중 첫 한림원장'이라는 또 하나의 기록을 남긴다.
이 원장은 "1974년 핵의학에 발을 들여 40년 넘게 과학기술계와 함께 했는데 마지막을 과학기술한림원장으로 봉사할 수 있어 매우 명예롭게 생각한다"며 "국가와 사회를 위해 내 능력을 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취임 소감을 밝혔다.
◆ "남들과 다른 것 찾아다녀…돈이 목적이었다면 개원했을 것"
이명철 원장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위치한 국군수도병원에 도착하니 중앙 홀에 초록물결이 가득 차 있었다. 어딘가 편치 않아 찾아온 수호자들이었지만 흐트러짐 없이 꼿꼿한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지도부 접견실에 들어서자 힘찬 붓글씨로 써놓은 '醫子醫世'가 눈에 띄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는 머리가 똑똑하기 보다는 마음이 따뜻하고, 수월성을 갖추기 보다는 인성이 좋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정말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은 좀 더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고, 의대에는 환자를 정말 마음으로 치료하고 싶은 동기를 갖고 있는 학생들이 진학했으면 좋겠어요."
서예작품에 대한 이명철 원장의 설명이었다.
이 원장은 10살 무렵까지 여름에도 긴 옷을 입어야 할 만큼 심한 피부병을 앓았다. 11살에 마지막 희망을 갖고 북유럽 의사들이 진료하는 국립중앙의료원을 찾았는데 한 달 만에 기적적으로 완치된 경험을 한 이후 장래희망이 의사가 되었다.
그렇게 서울대학교 의대에 진학, 전공분야로 내과를 선택했으나 마음속에는 계속 '무언가 새로운 것, 남들과 다른 것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커지고 있었다. 그러다 1974년, 본과 4학년 때 새로운 학문분야였던 동위원소 쪽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명철 원장은 "내과에서 반 년 정도 있으며 이 일이 적성에 잘 맞을까 걱정될 때 핵의학을 알게 됐다"며 "당시 독립된 전문분야로 자리 잡지 못했을 때라 주변에서 모두가 말렸지만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것에 매료돼 혼자 의학은 물론, 화학, 원자력 등 다양한 분야를 찾아다니며 배웠다"고 회상했다.
이후 31년 간 그의 행적은 그대로 국내 핵의학계의 역사가 됐다. 그는 동위원소 분야에서 전일제로 근무한 국내 1호 의사가 됐고, 1990년부터 6년 동안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과장을 맡았다. 1994년에는 영상장비인 PET를 국내 최초로 병원에 도입했고, 진료과 최초로 내부 전산네트워크(LAN)를 개설해 진료의 첨단화를 추구했다. 1995년 1월에는 핵의학을 전문 진료과목으로 추가하며 1996년 국내 첫 핵의학 전문의를 배출했다. 1997년에는 서울의대에 핵의학교실을 만들어 주임교수를 맡았고 대한핵의학회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국내 핵의학 발전을 견인했다. 또 밖으로는 국내 핵의학 수준을 알리기 위한 해외네트워크 구축에도 헌신한 끝에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세계핵의학회 회장을 역임하며 2006년 세계핵의학회를 한국에서 개최하는 큰 성과를 거뒀다.
이 원장은 "처음 우리나라에 핵의학이 도입될 때만 해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에서 우리를 가르쳐주러 왔는데 지금은 핵의학 경쟁력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다"며 "개원하는 대신 새로운 학문발전에 힘쓰며 얻은 결과에 매우 큰 보람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후배들, 제자들에게 항상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라고 조언하는데 용기를 쉽게 내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하지 말고 최소 10년은 노력한다는 생각으로 도전정신을 키우는 문화가 자리 잡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소문난 인맥王, "내 일의 동력은 사람…많은 회원들 만나 소통하고 참여 이끌 것"
이명철 원장은 자주 연락하는 사람이 3000여명에 달할 정도로 다양한 분야의 인물과 교류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인맥 관리를 시작한 계기는 '핵'하면 무기를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핵의학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 그는 핵의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여러 제도나 정책 부분에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고, 병원, 학교, 정부, 기업 등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만나 끊임없이 대화했다.
이 원장은 "그때는 SNS가 없어서 발로 뛰고 손으로 쌓는 인간관계였다"며 "해외네트워크를 위해서 20여 년 동안 매년 가족사진을 찍어 700여장의 연하장을 보냈더니 외국인들에게 호응이 있어 활동에 도움이 많이 됐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내가 이룬 성공의 동력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었다"며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능력을 발휘해줘서 내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한림원 운영에 있어서도 국내외 인적 네트워킹 확대를 주요 과업으로 삼고 있다. 그는 "큰 꿈과 변화의 크기, 네트워킹의 규모가 성공의 3가지 동력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 한림원이 미국의 NAS(National Academy of science) 수준으로 도약하는 것이 꿈인데 이를 위해 500여명의 석학회원들이 한림원 운영과 발전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주요 결정들을 원장 혼자가 아니라 같이 논의해서 결정하고 각 위원장과 학부장 등의 역할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피력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림원의 국가 과학기술정책 수립 기능을 강화하고 대내외 소통과 공감을 통해 국민이 사랑하는 과학기술한림원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또 우리 한림원이 국격을 높이고 국제적인 리더십을 가질 수 있도록 3년간 최선을 다하겠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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