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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문화진흥/과학기술 동향

출연연 기관장’ 경험해보니…“계승이 안된다”

과기한림원 2014. 10. 31. 13:31

전 출연연 기관장들 회고담

 


“취임하자마자 억 단위의 결제가 올라오는데 당황스럽기도 했다.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원장은 내부 선임일 경우 연구자에서 바로 경영자로 바뀌는 자리인데 내실 있는 경영을 위해서는 취임 후 전임 기관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좀 더 깊이 있는 준비를 하며 경영목표를 세울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강정극 전 해양과기원 원장)

 

리더의 자리. 권한이 있는 만큼 책임도 집중되는 자리로 부담감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더구나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출연기관의 수장일 경우 내적으로는 역량 결집, 외적으로는 성과창출이라는 압박에 부담감은 더욱 커진다.

 

출연연 기관장은 3년의 임기동안 맡은 분야의 정책, 연구방향, 경영 등 다양한 분야를 리드하며 우리나라 과학계를 진두지휘 해온 선장들이다. 그들의 현장 경험은 어디에서도 보거나 들을 수 없는 과학계의 귀한 자산이기도 하다. 대덕넷에서 그들의 경험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퇴임 후에도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강정극 전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원장, 김재현 전 한국화학연구원 원장, 권면 국가핵융합연구소 소장(임기 끝났으나 후임 기관장 미선임)이 한자리에서 만나 그동안 경험을 공유하고 앞으로 과학계가 나가야할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각자 분야는 다르지만 정부출연기관의 역할 정립과 과학계의 미래에 대한 고민에서는 생각이 같았다. 이들은 “출연연은 철학을 가지고 역할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기관장은 기관하나를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국익창출에 기여해야 하는 자리"라고 말하며 "전임 기관장과 후임 기관장이 만나 정보를 전달하고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제도적으로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경험을 통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동안 경험을 회고해보는 기분이 어떤가.

 

강정극 전 해양과기원 원장(이하 강): "퇴임한달 전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다. 해양과학자로서 현장에도 가보고 장비도 투입했지만 초기부터 해양관련 과학기술인으로 현장문제 해결을 위해 다가갈 수 없는 구조에 많이 아쉬웠고 안타까움이 컸다.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헬리콥터 소리가 들리는데 희생된 학생들이 집에 돌아오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정말 많이 힘들었다. 우리 연구원에서 해양에 대해 이야기 해주던 학생들이었기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지금은 해양 전문가로서 해양 환경의 친화적 이용방법들을 강의하고 있다. 강의 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해양은 금속광물 자원 등 이용분야가 무궁무진하다. 그간의 경험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고민 중이다."

 

김재현 전 화학연 원장(이하 김): "3년을 지내면서 출연연이 역할 적 측면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처음 부임해서는 출연연이 민간기업과 경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출연연은 기본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산업 발전을 이어가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화학연은 화학분야에서 산학연을 잇는 브리지 역할을 하며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기관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사명감을 가져야하는데 문제는 연구원들이 어디서 프라이드를 느끼며 사명감을 가질 수 있을까이다. 연구원들이 공무원 수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구원들이 프라이드와 사명감,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다음 '왜 못하는가' 하는 질책도 할 수 있다. 국가와 국민의 희망이 되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게 우선이다."

 

권면 핵융합연 소장(이하 권): "소장 임기동안 연구원 시기보다 부담이 컸고 배워야 했던 시간도 있었다. 원장과 소장은 연구소 하나를 경영하는 것이 아니고 국가차원에서 그 분야 과학계를 경영하는 것이다. 3년의 시간은 출연연의 역할을 재정비하는 시간이었다. 그 과정에서 출연연이 올바르게 국가의 성장과 경쟁력 강화에 연결되고 나아가 국민과 기업에 이익을 줄 수 있도록 출연연의 임무가 무엇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출연연은 민간연과 경쟁력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과학전반에 걸쳐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

 

전임 기관장의 경험을 후임 기관장에게 전수하는가.

 

강: "후임 기관장에게 전수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출연연 자체에서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가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왜냐하면 출연연은 선거 등을 통해 임명되는 것이 아니고 기간에 따라 임무를 마치고 바뀌는 것이다. 계승할수 있는 깊이있는 대처가 필요하다."

 

김: "구성원들이 정권이 바뀌면 모든 게 바뀔 것을 우려한다. 실제 정권이나 원장이 바뀌면 출연연의 각종 철학도 달라진다. 따라서 구성원들이 본연의 임무에 대해 잘 감당하고 있어야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을 때 옳다고 생각된 것을 제대로 어필할 수 있다. 신임원장이 오면 업무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리는데 주요 내용을 공유하는게 바람직하다. 그런쪽으로 지속할 필요가 있다."

 

권: "신임원장 부임 후 자료를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전임원장이 후임원장을 위해 그런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런 문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환경이나 제도가 마련돼야 안다. 오래 걸리는 사업에 대해서는 다음 원장에게 설명하고 같이 참여했던 연구원이 그 일에 대한 중요성과 가치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인수인계 문화가 정착된다면 혼돈과 착오는 줄어들 것이다."

 

인수인계의 필요성에 공감하나.

 

강: "정보를 인수인계할 수 있어야 한다. 정보가 커질수록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 정보가 없으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전임 기관장과 직접 이야기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경험이 있기 때문에 문서상이나 구두상으로도 말하고 싶었다. 기관장은 과학자에서 경영자로 바뀌는 것이다.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게 좋다. 준비한만큼 좋은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다. 취임후 3개월만에 경영목표를 내고 스텝을 새롭게 구성하는 등 짧은 시간에 기관 발전에 대해 말하는 것은 깊이가 없다. 신임기관장에게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김: "회계적인 간단한 것은 있지만 정책이나 사업은 거의 없다. 전임기관장과 후임 기관장이 거의 보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문화차이다."

 

권: "심도 있는 자료를 준비해 놓고 후임 원장과 대화를 하고 싶다."

 

신임기관장 모임, 교육은 있었나.

 

권: "별도의 모임은 없다. 기관내 자체 모임만 있다. 리더십도 능력이다. 리더십을 가진 인사를 기관장으로 잘 선임하면 교육할 필요도 없고 좋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기관장 선임 제도는 이사회에서 인터뷰 10분으로 결정한다. 검증기간은 1~2개월 걸리는데 인터뷰 시간이 너무 짧다. 중국의 핵융합연구소 기관장은 임기가 10년인데 후임기관장이 6개월 전부터 기관에서 상주하며 전임원장과 같이 논의한다."

 

강: "연구원에서 기관장이 되면 다른 차원의 교육이 필요하다. 어느 날 리더가 되기보다는 준비를 할 수 있는 교육이 KIRD 등에서 구성원을 대상으로 이뤄지면 좋겠다. 연구원에서 기관장이 되니 회계 단위가 커지면서 결정을 선뜻하기가 어려웠다."

 

이사회에서 원장 선임에 적합한 사람이 없다는 지적도 있는데.

 

김: "전문기관인 출연연에서 주도적이고 지속적으로 인재를 키워야 한다. 연구원들에게 공통의 정체성과 사명감을 심어주며 사람을 키울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PBS 제도로 연구원들이 연구기계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대학의 교수들은 각자 자기 목소리를 내는데 출연연의 원장과 연구원은 상하복명 관계다. 분위기가 침체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미래부가 결정권자이지만 해결책을 못내놓고 있다. 과학자들이 해야하는데 출연연도 고령화 되며 능동적이지 못하다. 화학연, ETRI 등이 하는 분야는 민간연구소의 연구역량이 높다. 출연연 역할 정립과 변화가 필요한 이유다."

 

권: "출연연마다 조금씩 다르다. 오래된 연구원은 PBS에 따라 과제가 이뤄지는데 변화가 필요하다. 새로 생긴 기관은 그나마 미션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연구소 중심의 대과제를 적용해 진행하면 해소 가능성은 있다. 핵융합연은 미션은 명확한데 금방 성과가 나는 기술이 아니라 평가시 어려움이 있다."

 

강: "모든 여건이 파이팅 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기관평가 나쁘면 내부 분위기도 침체된다. 원장 취임 후 해양과기원으로 기관명과 역할이 확대됐는데 이후 "해양과기원이 한 일이 무엇이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전의 정량적 평가는 문제가 있다. 기관장도 거기에 매몰될 수 있는데 흔들리지 않을 내공이 필요하다."

 

변화가 요구되는 점은.

 

강:"출연연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사명감을 충분히 인식하고 수행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정부는 짧은 시간에 요구하는 성과에 대해 시간적인 면이 필요하다. 해양 부분은 1~2년 만에 해낼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해양쪽은 과학기술계에서 보면 좀 더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다른 분야와 융합해 국가와 사회에 역할을 다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런 일이 원장 임기 3년으로는 어렵다.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가치를 수치, 논리로 해석하면 좋은 평가는 어렵다."

 

김:"임기는 복합적인 문제인데 미국 대학의 총장 임기는 18년이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나온 결과다. 앞으로 트렌드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큰 틀에서 어떻게 가는것이 바람직한지 논의가 필요하다."

 

권: "출연연은 어느 조직이든 역동성이 필요한 조직이다. 역동성을 높이는데 중요한 것은 변화다. 출연연마다 성격이 다르다. 개인적으로 출연연의 역할에 따라 중장기적 연구 측면에서 좀 더 긴 임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장기적인 목표달성도 가능하다."

 

16일자로 그동안 공석이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 한국전기연구원의 수장이 선임됐다. 현재 한국한의학연구원과 국가핵융합연구소는 원장 선임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이번 좌담회를 통해 신임 원장과 전임 원장이 정보를 공유하며 출연연과 과학계의 국익창출과 발전을 논의하는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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