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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한림원, '이탈리아 린체이 아카데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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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한림원, '이탈리아 린체이 아카데미'

과기한림원 2015. 4. 24. 15:54



1601년 체시 공작 후원으로 설립, 갈릴레오 등 참여 활동

외국인 회원, 과학윤리 분과 운영 등 특징


BC 385년 플라톤은 그리스 아테네 서쪽 교외의 숲에 ‘아카데메이아’라 이름붙인 철학 학원을 설립했다. 일종의 사설 교육기관이었다. ‘아카데메이아’란 이름은 그리스 신화의 영웅신 ‘아카데모스’로부터 따온 것이었다. 이곳에서는 철학을 중심으로 논리와 천문학, 수학, 음악, 웅변 등 다양한 분야를 가르쳤는데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인재를 배출하는데도 목적이 있었다. 후에 아카데메이아는 ‘아카데미’로 변형되면서 고대와 중세의 교육기관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됐으며 훗날에는 학회란 의미로 확장되어 다양한 학문의 영역에서 결성된 조직이나 가르치는 기관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아카데미 중에 가장 유명한 기관 중 하나는 아무래도 스톡홀름에 있는 스웨덴왕립고등과학원 (Royal Swedish Academy of Sciences)일 것이다. 1739년 설립된 곳으로 노벨물리학상과 노벨화학상 그리고 노벨경제학상의 노벨상 수상자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First edition of this work by Lincei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보다 더 오래되고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 있다. 바로 이탈리아의 ‘린체이 아카데미 (Accademia dei Lincei)’로 1601년 설립된 최초의 한림원이다. 르네상스와 과학혁명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탈리아에서 최초의 아카데미가 탄생한 것이 이상하지 않다.


과학 혁명기를 거치며 과학적 지식을 얻는 방법뿐만 아니라 과학이 실행되는 방식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는데 특히 이전까지는 서로 고립된 채 개인적으로 활동했던 과학자들이 한 곳을 중심으로 모여들면서 하나의 협회 (society)를 결성한 것이 큰 차이다. 그들은 서로의 연구를 교환하고 토론하면서 객관성을 확보하기 시작했고, 점차 서로 토론한 결과를 논문 형식으로 발표했으며,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한 과학 전문 학술지도 출현했다.


Corsini Palace (antique print)


이러한 활동들로 인해 과학만을 주로 연구하거나 과학에 주된 관심을 가진 과학 종사자 집단이 출현, 18세기를 거치면서 ‘과학자’라는 새로운 전문 직업으로 정착되었다. 


최초로 등장한 과학 단체인 린체이 아카데미는 이탈리아 로마-움브리아 지역의 귀족으로 자연과학, 그 중에서도 특히 식물학에 열정을 갖고 있었던 페데리코 체시 (Federico Cesi, 1586-1630)가 설립했다. 그는 해당 연구에 대해 발전시키기 위해, 네덜란드인 지오바니 에키오 (Giovanni Heckius), 이탈리아 움브리아 출신의 프란시스코 스텔루티(Francesco Stelluti)와 아나스타시오 데 필리스 (Anastasio de Filiis) 등 3명의 젊은 친구들과 함께 학회를 설립하고, 스라소니 (살쾡이)를 학회의 상징으로 차용했다. 당시 이탈리아에는 스라소니를 흔히 볼 수 있었는데, 매우 예리하고 명민한 시력을 가진 스라소니처럼 날카로운 판단력과 지식을 가진 학자들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유추된다.


체시의 비전 아래 학회는 전통적인 권위나 제약에서 벗어나 민주적이고 실험적인 관점에서 모든 자연과학을 연구하는데 중점을 뒀다. 이는 16~17세기의 이탈리아에 뿌리를 내린 다른 학술 단체와 구별되는 린체이의 근원을 특정하는 위대한 혁신이었다. 다른 대부분의 학회가 문학과 잡학에 관심이 있었던 반면 린체이는 자연과학에 모든 관심을 쏟았다.


Corsini Palace – Library Reading Room


Villa Farnesina – The Triumph of Galatea (Raphael)


설립 일원 중의 가장 유명한 이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Galileo Galilei)다. 갈릴레오가 <두 우주체계에 관한 대화>에서 주인공 살비아티를 학사원 회원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아마도 이 모임 내의 자신을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린체이 아카데미는 학회의 장을 맡았던 나폴리아인 델라 포타 (Della Porta)와 독일인 파버 (Faber)처럼 갈릴레오 학파가 아닌 많은 다른 이탈리아인과 외국 학자들을 포함하는 체시의 포용력 있는 계획에 따라 성장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로, 린체이 아카데미는 과학분야, 인문학분야에서 각각 90명의 정회원, 90명의 준회원, 90명의 외국인회원으로 구성되어있다.


초기 린체이 아카데미는 1630년 지도자이자 설립자인 체시의 사망으로 갑작스럽게 중단되었다. 이후 두 세기 이상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저명한 로마의 학자무리를 갱신하려고 시도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1800년대에 수도원장 스카펠리니 (Scarpellini)가 새로 이름붙인 ‘누오비 린체이 (Nuovi Lincei) 아카데미’로 물리학과 수학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결정적이고 최후의 복원은 1874년 정치가이자 과학자인 퀸티노 셀라 (Quintino Sella)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들은 윤리 및 인문과학을 포함하도록 범위를 확대하고 활발한 활동을 통해 린체이 아카데미의 높은 명성을 회복했으며, 알버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엔리코 페르미 (Enrico Fermi), 막스플랑크 (Max Planck), 빌헬름 륀트겐 (Wilhelm Roentgen) 등 걸출한 회원들을 배출했다.


린체이 아카데미는 분야별로 미팅을 통해 회원들 및 외부와의 교류를 활발히 하고, 출판과 시상활동도 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는 지난 2014년 8월 22일 MOU를 체결하고 2015년 4월 1일 '제1회 한・이탈리아한림원 공동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탈리아 한림원 회원들은 한국의 학술활동과 양국 교류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Villa Farnesina - exterior view (interior with frescoes by Rap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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