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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20주년 기획-③] 과학기술 인재 양성, 원로 역할이 중요하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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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20주년 기획-③] 과학기술 인재 양성, 원로 역할이 중요하다

과기한림원 2014. 6. 25. 17:19

 

‘사람이 미래다’라는 카피처럼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기업 광고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탁월한 한 명의 천재가 20만 명의 직원을 먹여 살린다"며 S급 인재 발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삼성전자는 얼마 전 특허전쟁 와중에 애플의 수석디자이너를 영입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를 두고 “소송은 졌지만 인재전쟁에서 이겼다”고 표현했다. 글로벌 기업들 간에 인재 확보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수 이공계 인력의 확보는 비단 글로벌 기업들만의 고민이 아니다. ‘과학기술=국력’이라는 명제를 근현대사 속에서 뼈저리게 확인해온 각국 정부 역시 과학기술 인재 육성에 주력하고 있다. 명실상부 세계 최강국인 미국도 마찬가지다. ‘슈퍼파워의 유지를 위해서는 과학기술인력 확보가 필수’라는 인식 아래 적극적인 정책 대응에 나서고 있다.

 

미국 과학기술계 주요 인사들로 구성된 과학·공학·공공정책위원회 (COSEPUP)는 2006년 의회의 요청으로 보고서를 한 편 제출했다. 보고서는 경제와 과학기술 전반의 현황을 진단한 뒤, 우수인재 확보와 기술혁신 촉진을 게을리 한다면 미국의 경쟁력이 가까운 장래에 크게 저하될 것이라 경고했다.

 

사실 미국 내에서 이런 우려가 표명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미국은 1980년대 후반 산업침체기 시절 일본에 크게 뒤처졌던 경험에 기초해 이미 90년대부터 이공계 교육 혁신을 위한 노력들을 전개해 왔다. 이와 함께 미국의 기초연구 및 대학교육 대표 지원기관인 국립과학재단은 초중등부터 대학까지 과학기술 전반의 교육 혁신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추진했다. 2006년에는 부시 행정부가 ‘국가경쟁력구상’을 발표했다. 국가경쟁력구상이란 과학·수학교육 혁신과 우수 이공계 인력 확보를 위한 마스터플랜이다.

 

또 다른 과학강국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프랑스는 18세기 대혁명 시대부터 국가 엘리트 양성코스인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통해 과학기술 핵심인재를 양성해왔다. 프랑스의 과학 인재 육성정책은 비단 에콜 시스템만이 아니다. 프랑스는 ‘라맹 알라파트 (la main à la pate, 반죽에 손을 댄다는 뜻)’ 교육으로 초등학생부터 과학의 기초를 다지게 한다. 어린 학생들이 직접 인체기관을 그리고 실험을 하며 과학에 대한 의문점을 풀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과학에 소질 있는 영재들이 어릴 때부터 정규교과 내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미래를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압도적인 과학기술 강국의 위상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과학기술 교육과 인재양성 시스템을 혁신하며 국가 경쟁력 유지를 위해 노력하는 미국, 교육 평준화의 사회이념 속에서도 수월성에 기반한 소수정예 과학인재 양성 교육을 고집하고 있는 프랑스의 사례는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 특히 더 눈여겨볼 부분은 국민들 사이에 미래의 과학기술 인재를 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것에 강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또한 초중등 과정부터 과학인재의 성장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려는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하면 안 된다. 

 

한림원의 과학기술인재 육성사업…석학 회원들의 전문성 십분 활용

 

한 명이 20만 명을 먹여살린다는 과학기술 인재는 여러 가지 생육조건이 잘 맞아야 태어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과학지식뿐만 아니라 사람, 교육 등 많은 것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선배 과학자들의 중론이다. 과학에 대한 지적 자극을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역시 그간 과학기술 부문 국내 최고의 석학단체라는 특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과학기술 인재양성 사업을 벌여 왔다. 특히 회원들의 전문성을 적극 활용해 ▲ 노벨상 수상자 등 해외 석학과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국내 젊은 연구자들의 국제 감각을 키워주는 ‘한림석학강연’ ▲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과 잠재적 능력이 높은 중고생을 선발해 국내 최고 석학과 일대일 멘토링이 가능하도록 한 ‘청소년과학영재사사’ ▲ 한림원 회원들이 일선 학교들을 직접 찾아가 강연하는 ‘한림원 석학과의 만남’ 등을 대표 사업으로 육성해왔다.

 

2008년 시작된 청소년과학영재사사는 일부 영재들만을 대상으로 했던 기존의 과학영재 지원사업과는 달리 전국의 모든 중고등학교 학생 중에서 선발된 학생들이 각자가 희망하는 분야의 석학과 1:1 사사(師事)를 받는 것이 특징이다.

 

매년 평균 30명 가량의 학생이 선발돼 6개월간 이메일, 전화 등으로 멘토와 지속적으로 교류한다. 또한 멘토 연구실 견학·실습과 참가학생들의 연구내용을 발표하고 함께 토론하는 한림미래과학캠프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김인화 청림 회장.

김인화 씨는 고교 3학년 때 한림원 영재사사 사업에 참여했다. 그는 현재 의과대학에 재학 중이다. 김 씨는 “영재사사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석학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을 것이고, 또 자신의 잠재력을 펼치려고 노력하는 뛰어난 친구들을 만날 수도 없었을 것”이라며 “전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도전을 가능하게 한 출발점이었다”고 평가한다.

 

“영재사사 사업은 학생들에게 세계적인 석학들이 모인 한림원의 무한한 영역과 자원에 접근할 기회를 열어주셨습니다. 함께한 학생들 대부분이 ‘신청할 때만 해도 이렇게 큰 힘이 될 줄 몰랐다’고들 말하곤 했지요.” 그는 청소년 영재사사 프로그램 참가학생들의 모임인 ‘청림’의 회장을 맡고 있다. 2012년 결성된 청림의 회원들은 평소 SNS를 통해 친목을 다지고 정기적으로 함께 모여 강연을 듣기도 한다.

 

정기모임 중인 청림회원들의 모습. 이들은 수료 후에도 지속적인 연계활동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강계원 한림원 종신회원 (KAIST 명예교수, KISTI ReSEAT 전문위원)은 2010년부터 멘토로 참여해왔다. 그의 손을 거쳐간 멘티는 모두 4명. 이제 모두 대학생이 된 멘티들 중 일부는 여전히 그에게 졸업 후 진로를 상의해올 만큼 끈끈한 사제관계가 이어지는 중이다. 

 

강 교수는 고등학생이었던 멘티들의 공통적인 첫인상으로 “놀라웠다”는 느낌을 얘기한다. 하나같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관심과 체계가 잘 서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엉성하고 부족했던 본인의 어린 시절과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팔순을 맞은 그에게 학창시절은 여름철마다 모내기에 바쁘고 태평양전쟁 군수품을 마련한다고 소나무 송진을 걷으러 산을 헤매느라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개념도 없던 시절”이다.

 

과학의 기초를 닦을 만한 여건을 갖지 못한 강 교수는 미국 대학원에 유학을 가서야 비로소 본인에게 필요했던 공부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낮에는 대학원 수업을 쫓아가고 밤에는 유기화학이나 기초화학 같은 기초과목을 다시 훑는 엄혹한 시기를 거쳤다. 이 때의 경험은 그가 한림원 영재사사 사업에 남다른 마음가짐으로 참여하게 되는 바탕이 됐다. 

 

“세계의 유명 과학자들은 대개 어릴 때부터 깊이 있는 배경을 가지고 시작했어요. 꼭 학교교육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가정이든 또 다른 스승이든 어디선가는 학문의 기초를 닦았던 거지요. 우리는 막연하게 노벨상이나 세계적인 연구를 얘기하는데, 좋은 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릴 때 이런 기반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나중에 언젠가는 반드시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고생을 해야 합니다.”

 

강 교수는 한림원 과학영재사사 사업이 청소년기에 꼭 필요한 지적·환경적 배경을 만들어주는 중요한 프로그램이라고 말한다.

 

그는 “실제로 실험실을 보고 선배 과학도와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막연한 꿈을 구체화하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공부는 책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게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소득”이라고 강조했다.

 

김병동 정회원 (서울대 명예교수)은 수년 전부터 청소년과학영재사사 사업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고사해왔다. 이 사업을 긍정적으로만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인위적인 관계맺기, 소수에 대한 특혜로 인식됐다”고 말한다.

 

그는 올해 처음 사업에 참여하며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김 교수는 “기대 이상으로 능력 있고 적극적인 멘티들을 보면서 중고등학교 시절에 영재들을 조기 발견해 석학들이 학업과 병행해 인생수업까지 지속적으로 잘 이끌어준다면 장차 훌륭한 과학기술계 리더로 성장해 국가 사회에 큰 공헌을 할 수 있게 되리라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림원의 ‘청소년과학영재사사’는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더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인재 양성사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풀어야 할 문제들도 있다.

 

“제한된 대상 늘리고 석학회원 참여도 높여야”

 

박규택 한림원 총괄부원장은 과학기술인재양성 사업이 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로 ‘제한된 인원’을 꼽고 있다. 청소년과학영재사사 사업은 물론 중고등학생 대상 강연 프로그램인 ‘한림원 석학과의 만남’ 역시 대상인원이 한정적이어서 소기의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기가 어렵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대상자뿐만 아니라 석학들의 참여도 역시 마찬가지다.

 

박 총괄부원장은 “해가 지날수록 (청소년과학영재사사의) 지원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대상인원을 늘리고 지방 학생들의 참여기회도 넓혀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며 “이들 사업이 과학기술 인재를 육성하고 이공계 진학을 유도하는 방안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지만 그보다는 과학자의 길이 명예롭고, 존경 받을 만하며, 보람된 길임을 과학자들이 직접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한림원 회원들에 대해서도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요청했다. 박 총괄부원장은 “이제 우리 회원들이 석학이란 이름에 걸맞게 과학기술 대중화에 앞장선다는 각오로 평생 축적해 온 지식과 과학기술을 후학들에게 적극 전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병동 교수 역시 한림원의 과학기술인재 육성사업이 수혜대상을 확대해 더 많은 청소년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 깊이 공감하고 있다.

 

김 교수는 특히 ‘한림원 석학과의 만남’ 사업에 대해 “우선 중고등학교에 널리 확산하고, 다음 단계로 학부모와 교사, 일반시민에게까지 지속적으로 전개돼야 한다”고 말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대일 멘토링보다 20∼100명 단위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지속적인 특별강연이 동기부여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최근 4년 간 한 일선 고등학교에서 진행된 석학강연은 그의 이런 믿음을 더욱 굳히는 사례가 됐다. 당초 이 학교는 한림원에 멘토링 사업을 요청했지만 한림원 회원들의 미온적인 반응으로 진척이 쉽지 않았다. 이에 김 교수는 한림원의 큰 자산인 최고 학자들이 특별강연의 형태로 젊은 세대의 교육현장에 뛰어들어 제도적으로 채울 수 없는 부분들을 보완해준다면 입시경쟁에 지친 학생들에게 좋은 동기부여의 기회가 될 것이라 믿었다.

 

김 교수는 “첫해 14명의 석학강연에 이어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는 최초로 노벨상 수상자 강연까지 이어지며 학생과 교사, 학부모 모두의 호응이 대단했다”며 “결국 이 해에 학생들의 대학진학률이 크게 늘어난 것을 보면 (학업 성취도는) 우수하지만 인생의 높은 가치나 과학의 진정한 재미 등을 모른 채 입시경쟁에 내몰리는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좋은 계기가 됐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한편 2008년 발표된 OECD 보고서 ‘박사학위 소지자의 경력자료: 현재와 미래전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분야 박사학위 소지자는 1천 명당 3.5명에 불과해 과학기술인재 수급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같은 회원국인 스위스는 22.8명, 독일은 12명이다.   

 

또한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가 중고등학생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학생들은 대체적으로 과학기술인에 대해서 긍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과학기술분야로 진로를 결정하는 데필요한 적절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에 따라 학생 시절부터 생애주기별로 눈높이에 맞는 과학기술 분야의 진로정보를 제공하고 미래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이공계 인재 육성의 전제조건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이들의 진로지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학부모와 교사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맞춤형 과학 대중화 사업도 시급한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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