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한민족 과학기술의 산 역사 ‘명예의 전당’ 국민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조성되어야 본문

과학기술인 예우 및 시상/과학기술인명예의전당

한민족 과학기술의 산 역사 ‘명예의 전당’ 국민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조성되어야

과기한림원 2014. 10. 21. 21:22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역사가 서양이나 일본, 중국에 비해서도 아주 짧고 보잘것없다는 생각은 한국인이 스스로에 대해 품고 있는 흔한 오해 중 하나다. 이는 동양과 이슬람 세계의 유산을 거름 삼아 마침내 서구에서 꽃을 피운 근대과학의 연장선상에서 우리 민족 전체의 과학기술 유산을 재단하려는 성급한 시도일 수 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 속에는 놀랄 만큼 다양하고 창의적인 과학기술의 전통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한민족 특유의 재능과 지혜가 담겨 있는 첨성대, 측우기, 금속활자, 한글 등은 비단 우리만 자랑스러워하는 게 아니라 세계가 함께 인정하고 있는 과학문화 유산이다.

 

한림원의 역점사업 중 하나인 ‘과학기술인명예의전당’은 이처럼 우리 역사 속에 면면히 흐르는 과학 중시의 정신과 문화가 21세기 한국에서 새롭게 꽃피울 수 있는 토양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새롭게 조명되는 우리 민족의 과학기술 저력


과학기술인명예의전당사업은 이공계 위기론, 즉 이공계 진출에 대한 청소년의 관심 저조가 국가적인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한 2001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거론되기 시작했다. 훌륭한 업적을 남긴 과학기술인의 발자취를 소개하고 이를 항구적으로 전시, 보존함으로써 과학기술인 분야에 대한 관심과 진출을 촉진하자는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과학기술인의 사기를 진작하는 사업은 젊은 과학기술인에게 귀감이 됨과 동시에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한민족 과학기술인의 참모습을 발견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우수한 과학기술과 과학정신에 대한 인식을 새삼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이에 따라 2002년 3월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본격화된 과학기술인명예의전당사업은 다음해인 2003년, 마침내 과학기술기본법 제 31조 ‘과학기술인의 우대’ 조항에 따라 명예의전당을 개관하고 14인의 과학기술인을 최초로 헌정하며 과학문화 대중화의 물꼬를 트게 된다. 이 당시 최초로 헌정된 인물은 우리나라 최초로 화약과 화약무기를 개발한 최무선부터 한타바이러스 발견으로 ‘한국의 파스퇴르’라 추앙받고 있는 이호왕 박사까지 고려시대와 대한민국, 역사인물과 생존인물을 넘나들며 우리 민족에게 내재된 특유의 ‘과학 DNA’를 실감케 했다.

 

과학기술인명예의전당 지역순회 특별기획전

 

 

엄격한 한림원 심사로 권위와 객관성 확보


사업 첫 해 한국과학문화재단이 주관한 과학기술인명예의전당사업은 이듬해인 2004년, 우리 한림원이 사업시행 주관기관으로 변경됐다. 심사의 전문성과 객관성을 더욱 높이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최고의 석학단체인 한림원이 주관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한림원은 과학기술인명예의전당의 권위를 확립하기 위해 헌정대상자 선정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후보자 추천은 일간지와 인터넷, 관련기관 공문 등이 발송된 뒤 과학기술 관련단체장이나 5인 이상으로 구성된 추천인단 등의 추천을 통해 이뤄졌고, 후보자의 자격 역시 역사적 정통성을 지닌 과학기술선현 또는 과학기술인 중 탁월한 업적과 국가발전 등에 대한 기여도가 필요해졌다. 또한 과학기술인의 귀감이자 국민적 존경을 받을 만한 인품도 중요한 고려사항이었다.

 

이학, 공학, 의약학, 농수산, 과학기술선현 분야 등 국내 대표 석학들을 망라해 구성된 한림원의 후보자심사위원회는 추천된 후보자의 자격과 업적을 면밀히 조사하는 한편, 전문가의 시각에서 자체적으로 후보자를 발굴·추천하기도 했다.

 

국립과천과학관에 위치한 과학기술인명예의전당 상설전시관

 

이렇게 후보자심사위원회가 천거한 인물은 다시 과학기술인명예의전당 헌정자 선정을 위한 최종 의사결정기구인 인물선정위원회에서 다시 한 번 철저한 검증 작업을 통해 적격성을 가려 최종적으로 명예의전당 헌정 여부를 결정짓는다.

후보자 심사과정에 참여해온 김영식 정책학부 정회원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 전하는 에피소드는 과학기술인명예의전당 후보자를 스크리닝하는 과정이 얼마나 폭넓고 세밀하게, 또한 때로는 격렬한 찬반토론 속에 이뤄지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김 교수가 헌정인물 중 특별히 기억하는 이는 2004년에 선정된 ‘서호수’라는 다소 낯선 인물이다. 서호수 (1736-1799)는 조선 정조시대 천문역산 사업의 책임자로 천문역산의 개혁과 함께 수양의 수학과 천문학 이론을 해설해 국내에 전파한 과학자다. 하지만 장영실이나 허준, 홍대용 등 조선시대 과학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 명예의전당 헌정이 쉽지 않았다.

 

김영식 정회원김영식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김 교수는 “서호수 선생이 과학기술인명예의전당에 오른 것은 단순히 유명한 발명이나 발견이 아니라 학자이자 관리로서 과학기술을 전문적으로 깊이 연구하여 수준 높은 지식을 이룬 점을 높이 평가한 것”이라며 명예의전당 사업이 갖고 있는 다양한 의미를 설명했다.

 

세종대왕이 명예의전당에 헌정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사위원회에서는 국왕이 선정될 수 있느냐에 대해 논란이 분분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위원들에게 세종대왕이 과학기술의 여러 분야를 강력히 진흥하고 본인이 직접 그 전문적인 내용에 적극 관여하는 등 과학기술 진흥에 큰 공로가 있음을 설득하였고 마침내 2008년 명예의전당에 헌정될 수 있었다.   

 

김 교수는 고려말~조선조의 과학자들이 과학기술인명예의전당에 다수 헌정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의 전통적인 과학기술이 국왕이나 선비들의 관심에서 배제되어 있었다는 그간의 오해를 불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더불어 현재의 후보자 심사·선정 과정에 일정 부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놨다. 선정위원회 각 분과의 의견이 모두 중시되며 모든 분과에 무난한 사람이 후보자로 선정되는 경향이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김 교수는 “이에 따라 각 분과의 추천을 받되 선정 단계에서부터 어느 한 분과에 치중되지 않는 인사들로 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또한 “여러 해 사업이 이어져오며 많은 과학기술인들이 선정된 만큼 앞으로는 후보자의 선정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학기술명예의전당 지역순회 특별기획전

 

 

“국가가 수여하는 명예…그에 걸맞는 내외형 갖춰야”


김근배 전북대학교 교수는 역시 사업이 본래의 목적대로 한국의 뛰어난 자취를 담는 사업이며 동시에 오랜 전통의 우수한 과학문명을 드러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과학기술인명예의전당사업과 관련된 정책연구과제에 연구원으로 참여한 바 있다.

 

김근배 교수김근배 전북대학교 교수

김 교수는 세계 과학기술사의 극소수 과학기술 영웅들을 비교 기준으로 삼아 우리 역사 속에서 뛰어난 과학기술자의 존재나 성과가 적었던 것으로 이해하려는 한국인들의 경향에 대해 “한국의 과학기술 역사는 다른 어느 국가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우수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이 같은 인식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의 뒤쳐진 근대과학 수준이 한국의 과학기술 역사 전체로 보면 아주 예외적인 일부분의 현상이라면서 “앞으로 과학기술인명예의전당사업이 (과학적으로) 불국사를 조성한 김대성 같은 인물들까지 더 적극적으로 담아내고 동시에 현대 한국의 놀라운 과학기술 성취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와 함께 향후 과학기술인명예의전당사업의 추진방향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먼저 “기본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뛰어난 과학기술인에게 명예 (Credit)를 주는 사업인 만큼 그 형태와 내용이 걸맞아야 한다”면서 명예의전당이 현재보다 더 좋은 콘텐츠와 디스플레이,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국내외의 누가 보더라도 존경심을 가질 수 있는 하드웨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헌정 대상자의 모든 자료를 국가차원에서 수집해 활용하는 기반, 즉 아카이브 또는 과학기술인 뱅크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김 교수는 “선정 이후 후속사업으로 전기 발간, 특집 보도, 다큐멘터리 제작, 유적 탐방과 기념강연회, 도로명 지정 등을 연계해 국민과 더 많은 공감을 나눌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한 이를 통해 헌정자 선정에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도 고려할 만하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한편, 당초 국립서울과학관에 조성됐던 과학기술인명예의전당은 2008년 새로 개관한 국립과천과학관으로 이전했다. 이를 계기로 헌정된 과학기술인들의 연구성과, 논문, 저서와 유품 등을 망라해 새롭게 전시관을 꾸미면서 국립과학관을 방문하는 청소년들에게 과학정신을 함양하는 명소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전국 각지의 과학관을 도는 순회전시 관람인원을 포함해 연간 약 250만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방문하고 있다. 

 

 

과학기술인명예의전당 헌정인물 (연대기순)

 

헌정인물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