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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학들, “수능서 기하 배제는 시대착오적 결정” 한 목소리 본문

정책연구 및 자문/한림원탁토론회

석학들, “수능서 기하 배제는 시대착오적 결정” 한 목소리

과기한림원 2018. 5. 3. 17:54

-과기한림원, ‘대한민국의 수학교육, 이대로 좋은가’ 주제 한림원탁토론회 개최
-“기하는 논리와 상상력을 키우는 과목…2022년 수능에 다시 포함” 요구
-학습량 줄여도 수포자 늘어…무조건 축소보다 새로운 교육방법 필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국가별로 창의적 인재육성에 힘을 쏟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교육과정은 오히려 후퇴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지난 2월말 교육부가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이 치를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학영역(수학 가형) 출제 범위에서 '기하'를 빼기로 발표하자, 기초과학과 공학을 가리지 않고 과학기술계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제125회 한림원탁토론회 지정토론]

 

이러한 가운데 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 이명철)은 5월 2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 대한민국의 수학교육,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제125회 한림원탁토론회’를 열고, 과학기술계가 해야 할 역할 등을 함께 논의하며 전문가들과 의견을 나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권오남 서울대학교 교수(한국수학교육학회장), 박형주 아주대학교 총장, 박규환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등 3명이 주제 발표를 진행했다.

 

이명철 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이번 토론회에서 일차적으로는 수학교육을 이야기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향후 변화될 환경에서 경쟁력 있는 이공계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방안”이라며 “심도 깊은 논의를 통해 과학기술계에서도 올바른 과학∙수학교육에 대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오남 서울대 교수, “교육은 최소 십년지대계…2022년 수능에는 반영해야”

 

한국수학교육학회장을 맡고 있는 권오남 서울대 수학교육과 교수는 ‘미래를 향한 수학교육과정과 평가’를 주제로 발표하며 ‘기하’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권 교수에 따르면 기하는 양자컴퓨터,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3D프린팅 등 첨단과학의 기본이 되는 학문으로 평창 겨울올림픽의 오륜기 드론쇼도 공간에 대한 수학적 사고가 있어 가능했다.

 

권 교수는 “기하는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공간적 개념과 입체적 사고를 통한 논리체계를 갖추게 하고 상상력을 키우게 하는 유일한 과목으로, 이미 선진국에서는 한국보다 더욱 심화된 내용으로 교육과정에 포함하고 있다”며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있는 지금, 기하는 미래 교육에서 가장 필요한 과목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2021학년 수능출제범위를 위한 정책연구가 진행되던 2015년 당시, 연구진과 자문단은기하가 진로선택과목으로 분류되면 수능 출제범위에서 제외될 것을 우려해 일반선택과목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교육부는 과목 분류와 수능 출제범위는 상관이 없다며 연구진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우려대로 ‘기하’는 2021학년도 수능 출제범위에서 제외됐다. 기하가 진로선택과목으로 이동한 상황에서 출제되는 것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원활한 운영과 수험생 부담 완화라는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고, 기하가 모든 이공계의 필수과목으로 보기 곤란하며, 설문조사에서 ‘기하 출제 제외’ 의견이 다수라는 것이 교육부의 논리다.

 

 

권오남 서울대 교수

이에 대해 권 교수는 조목조목 반박하기도 했다. 그는 “과학탐구에 속한 다른 과목의 경우 진로선택과목임에도 불구하고 수능 범위에 포함됐지만 기하는 배제되어 일관성이 없고, 설문조사 항목을 살펴보면 애초에 기하가 제외되어 있다”며 “또 수능에서 제외되면 고교 교육과정에 편성되기 어려운데, 이공계 대학에서 기하 이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일침했다.

 

그는 미국, 일본, 영국, 호주, 싱가포르 등의 대학입시에 기하 영역이 반영된 것을 소개하고, 현재 한국수학관련총연합회가 2022학년도에라도 수능에 기하가 반영될 것을 논의해 달라는 내용의 ‘대학입시제도 수능 과목 구조 논의 관련 수학계 의견서’를 국가교육회의에 제출한 상태임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권 교수는 “선진국 교육과정의 경우 최소 10년 주기로 변화를 주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3년 마다 바뀌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최소 10년은 이어가는 교육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형주 아주대 총장, “저무는 ‘지식의 시대’…’통찰의 시대’에서 ‘기하’는 필수적”

 

박형주 아주대 총장은 ‘생각연습과 수학교육’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현재 시대의 흐름이 지식의 시대에서 통찰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총장의 말에 따르면 지식의 총량이 많아진 시대에서 중요한 것은, 많은 것을 단지 그냥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에 필요한 것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능력을 함양 시키는 것이다. 지식 과잉의 시대에 흩뿌려져 있는 방대한 정보에서 의미를 끌어내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는 이것을 ‘통찰’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통찰의 시대에서 ‘생각연습’은 기초 자료를 모으고 합리적 추론의 과정을 거쳐 결론에 다다르는 능력을 얻어 나가는 과정”이라며 “이런 연습과 훈련을 받지 못하면 합리적 추정과 궤변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사실과 선동을 혼동하게 되며, 창의와 임기응변을 동류로 여기게 된다”고 경고했다.

 

박형주 아주대 총장

이어 그는 “그런 면에서 볼 때 생각하는 방법을 길러주는 최고의 교육은 수학과 다독(多讀)”이라며 “특히 기하는 사유의 과정을 거쳐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는 기제로서 필수적인 과목이고 사유의 과정은 대학에서 필요한 사람이 알아서 배우면 되는 것이 아니라 훨씬 전 단계에서 교육되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또 박 총장은 “수능체제로 바뀐 1994년부터 7차에 거친 교육과정 개혁으로 수학 학습량을 줄여왔지만 수학포기자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며 “어려운 수학 개념을 제대로 설명을 안 해주고 반복해서 문제만 푸는 교육방법을 바꿔야지 무조건 교과 내용을 축소하는 것은 제대로 된 교육방향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창의적 사고의 바탕이 되는 기하와 벡터 영역은 교육을 장려해야 할 분야이고, 2022년 수능에서 다시 포함시키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며 “필요한 변화를 교육과정과 평가방식에 담아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규환 고려대 교수, “대한민국 교육 실타래, 이젠 끊어야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교육 실타래는 아무도 못 풉니다. 장관은커녕 대통령도 못 풀어요. 하나님은 풀 수 있을까요? 아뇨.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하나님도 못 풉니다.”

 

박규환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는 기사를 인용하며 현재의 교육계 상황을 비판했다. ‘고등학교 수학교육과 벡터’를 주제로 발표한 박 교수는 “학습량 경감을 이유로 교과과정 범위를 축소할 경우 사고마저 제한될 위험이 크다”며 "학습량을 줄이니 똑같은 계산법을 반복하게 되고, 어려운 것은 사교육을 통해 답만 얻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규환 고려대 교수

또한 그는 진로선택과목으로 구분된 ‘기하’와 ‘벡터’가 내용마저 축소됐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예를 들어 평면은 2차원, 우리가 사는 공간은 3차원인데 공간 차원 단위가 무엇인지 수학적으로 접근해 4차원, 나아가 n차원(다차원)으로 일반화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개정된 과목의 범위에서는 2차원 기하로 한정되어 있다. 박 교수는 “해외의 경우 n차원(다차원) 교육 과정이 일반적”이라며 “최소한 3차원이라도 가야 하는데, 지금 개정안대로라면 그 이상을 가르치게 될 경우 선행학습으로 규정 위반이 된다”고 토로했다. 

 

그는 반복되는 한국의 교육 실타래가 끊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변화의 기로에 서 있는 학생들은 새 교육을 원하는 데 학교가 고인 물 신세이다 보니 아이들이 사교육으로 갈 수밖에 없고, 경제력에 따라 입시가 갈라지게 되는 것”이라며 “정부는 사교육으로 간 아이들을 잡으려 다시 제도에 손대는 것이 결국 무한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수학전문가들, 첨단 과학시대 이끌 인재 양성 위한 제도 논의

 

주제발표 이후 이어진 지정토론에서는 이향숙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대한수학회장)를 좌장으로 김도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한림원 이학부장),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윤상준 양명고등학교 교사, 이석한 한림원 학술담당부원장, 임화섭 연합뉴스 편집국 탐사보도팀장 등이 참여해 의견을 공유했다.

 

김도한 서울대 명예교수는 실타래를 끊어야 한다는 박규환 교수의 말에 동의하며, 정부의 심도 있는 접근을 주문했다. 그는 “2022년 수능 출제범위 공론화위원회에는 교육학자가 대부분이고 과학자는 1명뿐이라고 들었다”며 “폭넓은 논의가 진행되려면 다양한 구성원들이 함께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점에서의 수능 범위를 논할 수 있는 전문가가 더 많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어려운 문제는 시일을 들여 결정할 필요가 있다”라며 “심도 있는 고민이 제외된 결정이라면, 아마 다음 정부에서 또다시 뒤엎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학 교사 출신인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토론자로 나섰다. 그는 “기하를 제외한 2021년 수능은 미적분 중심인데 아날로그 시대의 결정론적 특성을 갖는 미적분학이 디지털 미래 시대에도 수학의 모든 것이어야 하는지는 고민”이라며 “미래에는 어떤 수학이 필요한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의 수능 시험도 해외의 여러 나라와 같이 스스로의 힘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능력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며 “지난 4월 25일부터 ‘과학, 수학, 정보교육 진흥법’이 시행에 들어갔는데 미래 수학교육의 방향, 수학교육의 많은 문제들의 원인과 해법을 찾는 데 이 법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윤상준 양명고등학교 교사는 “‘기하가 모든 학생에게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며 원론적인 질문을 던졌다. 윤 교사는 “당장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고등학교에서 공간에 대한 학습을 다룰 수 있는 과목은 기하뿐”이라며 “기하는 다양한 측면에서의 수학적 사고력을 키우며, 그것들은 연계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료가 되므로, 학교 교육에서의 기하는 학습의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가 생각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수학 교육 내부에서의 고민과 문제 의식이 외부로부터 많은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윤 교사는 “수학 교육의 발전을 위해 이러한 상황을 정확하게 직면하고, 비판을 충분히 숙고하여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수학 교육의 문제점을 잘 진단하고 개선할 수 있는 주체는 수학 교육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집단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석한 과기한림원 학술담당부원장은 “수학은 존재하는 것들의 추상화를 통한 새로운 개념을 정의하고 이해하는 과정의 학문으로, 이공계는 물론 모든 분야의 사고 틀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기능을 갖고 있다”라며 “그런 면에서 볼 때 수학 교육을 강화하고 그 교육 방법도 새롭게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지식과 툴을 활용하는 문제 풀이 능력 배양도 중요하지만, 추상적 개념의 이해를 기반으로 사고의 틀을 확장시키는 데 더 큰 비중을 두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임화섭 연합뉴스 편집국 탐사보도팀장은 전문가 집단의 사회적 책임과 수학 교과 과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1995년 성균관대 본고사 수학2 문제와 관련된 논란을 사례로 들었다. 임 팀장은 “재판 과정에서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구했는데 그때 대한수학회의 대답은 ‘대한수학회 이사회에서 몇 차례 토의하였지만, 이 문제에 대하여 답할 수 없음을 알려드린다’였다”며 “전문가로서 의무와 권한을 포기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고 개탄했다.

 

이어 그는 “이런 문제가 비단 수학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데, 입시 오류나 교육 과정의 문제도 결국 과학기술계와 관련이 있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며 “‘기하’ 배제는 반드시 전문가들이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발제자, 토론자 등 주요 참석자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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