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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원 사람들/회원

"세계무대서 인정?…지역 사랑과 기여가 먼저"

과기한림원 2015. 10. 30. 17:46



김도연 포스텍 신임 총장
노벨상 수상 보다 과학 저변 확대부터
사회에서 제역할하는 공학도 배출할 것

 

“많은 대학들이 세계에서 인정받는 대학이 되겠다는 목표를 이야기하지만, 사실 지역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대학이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대학이라도 실제로 속해 있는 지역에 기여하는 바가 있어야 합니다. 특히 지역민들이 실감할 수 있을 만한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포항지역에서 창업한 기업이 성공해 고용을 창출한다거나, 혹은 대학에서 개발한 기술을 지역기업에 직접 이전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최근 과학기술계와 경제·산업계의 눈길이 포항으로 쏠리고 있다. 철강경기의 지속적 불황으로 침체 그늘이 드리워진 도시를 연민과 걱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재도약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주목하고 있다. 우려가 희망으로 바뀐 이유 중의 하나는 김도연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전 위원장의 포스텍(POSTECH·포항공과대학교) 총장 취임이다.

 

김 신임 총장은 연구 현장에서는 최고의 연구자로, 정부·대학에서는 행정가로 활약한 명실상부 과학기술계의 거목(巨木)이다. 그는 서울대학교와 한국과학원(현 KAIST)에서 각각 학・석사 학위를 했고,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받아 블레즈파스칼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구와 교육에 매진, 세라믹 소재분야에서 세계적 석학이자 동료들과 학생들에게 존경받는 교수가 됐다. 초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울산대 총장, 국과위 위원장 등을 거쳐 지난 9월부터 포스텍 수장을 맡았다.

 

어느 자리에서든 개방과 혁신에 대해 소신 있는 행보를 걸어왔던 김도연 총장은 포항에서도 특유의 리더십과 포용력으로 지역사회에 빠르게 스며들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그는 “포스텍 학생들 역시 포항 시민임을 자각하고, ‘공부하고 연구하며 생활하는 삶의 한 부분’으로서 지역을 사랑하고 알아가도록 하기 위해 학부과정에 지역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탐방하는 과목을 운영하고 있다”며 “지역의 혁신에 대해 열정과 책임감을 갖고 있는 포항 오피니언 리더들과 서로 간의 협력을 통해 앞으로 지역사회가 성장하는데 포스텍이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취임 두 달, 벌써부터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2015년 하반기를 숨 가쁘게 보내고 있는 김도연 총장에게 포스텍과 이공계교육, 과학기술 발전과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고견을 들어봤다.




 

“학생들에게 학문경험과 산업경험 균형 있게 전달해야”

 

김도연 총장이 포스텍을 이끌어가는 것이 정해진 후 포항지역사회에서 포스텍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기사가 미디어에 보도됐다. 그런 기대에 화답하듯 김 총장은 취임 후 ‘포스텍은 돈이 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포스텍의 롤모델은 노벨상이 아니라 기업가’ 등 색깔이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포스텍의 계획에 대한 부분을 먼저 확인했다.

 

- 실제 포항 현장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지역 기업과 포스텍에서 철강업계 부진에 대한 위기감을 많이 느끼고 있는지요?

 

“포항 지역은 이미 위기를 사전에 대비하고 발전과 혁신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준비를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취임 후 만나 뵈었던 오피니언리더 분들은 지역의 혁신에 대해 열정과 책임감을 갖고 계셨습니다. 여러 방안이 모색되고 있으며 서로간의 협력을 통해 앞으로 지역사회가 혁신하고 성장하는데 이들이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노벨상에 다들 푹 빠져있을 때 최근 포스텍이 ‘공과대학’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초학문에 대한 연구가 포스텍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엔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젠 여기에 더해 기술의 사업화에도 좀 더 열성을 갖자는 주장이지요. 학문적 경험(Academic Excellence)과 더불어 산업의 경험(Industrial Excellence)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사실 우리사회는 아직 대학에서 기술을 만들어 경제적 이윤을 얻는 일에 다소 익숙하지 못한 편입니다. 포스텍은 개교부터 산·학·연 협동이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고, 이를 건학이념에서도 천명하고 있습니다. 탁월한 연구 인력과, 이들을 뒷받침할 인프라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지요. 이러한 자원을 바탕으로 좋은 기술을 만들어 기업에 이전하거나 혹은 교수나 학생들이 직접 창업해서 실질적으로 기업이나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대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교수와 학생들의 창업과 관련해 포스텍의 갖는 강점은 무엇입니까?

 

“포스텍의 경우는 독특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APGC-Lab이라고 하는데요. APGC는 Association of POSTECH Grown Companies를 의미합니다. 이미 창업을 통해 자리 잡은  동문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학생들이 창업을 준비할 때 멘토로 나서서 후배를 적극적으로 돕는 시스템입니다. 창업에는 아이디어만이 아니라 여러 행정적 절차나 경영자적인 노하우가 필요하다보니 아무래도 실패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미 창업에 성공한 동문들이 이를 잘 인도해주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가 있겠지요. 작은 대학으로 선후배 관계가 돈독한 포스텍이니까 이런 제도가 용이한 측면도 있지만, 실제로 학생들의 반응도 아주 좋습니다. 시행 1년도 안되어 7개 벤처가 이미 창업할 정도로 상당히 효과적인 제도라 생각합니다.”

 

-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대학생들이 손쉽게 창업을 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최근에는 플랫폼 어플리케이션이나 게임 앱 개발의 비중이 너무 커서 조금씩 걱정되기도 합니다. 학생들의 창업이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하시는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졸업 후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하거나 진학만을 생각하던 학생들이 창업을 점차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창조경제 정책의 성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나이가 많아져서 실패하게 되면 이를 복구하기가 쉽지 않지만, 젊었을 때 이것저것 경험해보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실패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겠지요. 물론 특정분야의 비중이 큰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이는 기업가정신과 창의성을 길러주는 교육이 더욱 확충된다면 해결될 문제겠지요.” 
 
“포스텍의 미래를 위한 전반적인 교육 커리큘럼 혁신 고민”

 

김도연 총장은 줄곧 개방과 혁신을 담은 ‘오프노베이션(Openovation : open+innovation)’을 주창해 왔다. 실제로 총장 부임 후 지역은 물론 외부 대학들과도 협력하며 오프노베이션을 실천 중이다.

 

- 포스텍, KAIST, 서울대학교가 이공계 기초과목 온라인 공개수업 강좌(MOOC)를 공동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추진되었나요?

 

“강의실 내에서 교수와 학생이 만나서 가르치고 배우는 지금까지의 교육방식은 미래를 살아갈 지금의 학생들에게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은 적어도 120세의 수명을 갖게 될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대학 졸업 후에도 70년 정도의 활동적 삶을 준비해야 합니다. 평생을 스스로 배우는 삶의 방식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 방법 중의 하나가 강의실의 한계를 넘어서는 온라인 강의라고 믿습니다. MOOC (Massive Open Online Course)은 학생들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학습태도를 가지도록 하는데도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 일반에 공개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향후 방향은 무엇입니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이공계 대학들이 나서서 만들어 낼 좋은 강의를 일반인들은 물론 대학 강의를 미리 접하고 싶은 고등학생들과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강의실에 와서 정해진 시간에 수업을 듣는 것은 여러 이유로 어렵겠지만, 온라인이라면 공유는 훨씬 쉬워집니다. 포스텍, KAIST, 서울대의 좋은 강의들이 공개된다면 이공계 대학생들의 기초실력을 키우는 것은 물론, 고등학생들에게는 이공계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겠죠. 대학의 입장에서는 대중들의 기억에 남는 강의를 위해 교수님들이 더 좋은 컨텐츠를 개발하고자 노력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강의는 국민 모두에게 과학과 공학이라는 학문의 즐거움을 알리는 것이 큰 목표입니다.”

 

- 오프노베이션에서 개방과 함께 중요한 것이 내부 경쟁을 통한 뼈를 깎는 혁신입니다. 포스텍 내부에서도 개혁해야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포스텍은 순수학문의 탁월성을 추구하는 연구자와 더불어 이윤을 창출해 직접적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업가를 길러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에서 다른 기업들과 경쟁하며 성과를 올린 기업인들이 자신의 노하우와 역량을 대학에 직접 들어와 전파할 수 있도록 학교의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대학 교수님들도 자유롭게 밖으로 나갈 수 있어야겠지요. 이러한 개방은 자연스럽게 경쟁을 유도해 낼 것으로 생각합니다. 치열한 내부경쟁이 있어야 외부에 대한 경쟁력이 올라가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미래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학부교육의 혁신이 꼭 필요합니다. 포스텍은 다른 대학과 달리 매년 320명의 적은 숫자만을 선발하는 소수정예 대학입니다. 기존의 교육 방식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될 것입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구성원들과 함께 고민 하면서 학생들이 사회에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교육 커리큘럼 혁신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금 노벨상 수상자 나오면 ‘착시효과’ 우려…과학 저변 확대가 선행돼야”
 
김도연 총장은 인생의 대부분을 대학에서 보냈다. 연구자 못지않게 교육자로서의 정체성도 크다. 초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역임하며 이공계 교육의 변화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그는 교육 방법에 대해서는 냉철한 비판을 했지만 학생들에 대해서는 늘 긍정적이었다. 그는 “의대보다 이공계 대학의 입학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이공계의 위기’라고 할 필요는 없다”며 “일정 수준 이상의 학생들은 잠재력이 같고, 교육이 중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현재의 위기에 대해서도 “반세기만에 빠른 성장을 이룬 만큼 우리사회가 겪는 갈등과 혼란이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사고와 자신감으로 민족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자"고 조언하고 있다. 김도연 총장에게 이공계 교육과 과학기술계의 미래에 대한 부분을 질문했다.
 
- 10월이 노벨상 발표 시즌이니 관련 질문을 많이 들으셨을 것 같습니다.

 

“네, 저도 올해 노벨상 수상이 언제쯤 가능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의 잔치 구경하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당장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답했습니다. 좀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이 R&D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은 길게 봐도 20년에 불과한 짧은 시간입니다. 빠른 시간 내에 다른 강국들과 대등하게 경쟁할 정도로 성장하기는 했지만, 시간이 짧다보니 아직까지 기초과학의 저변은 다른 국가에 비해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갈 길이 멀죠. 이런 상황에서 어떤 특출한 사람이 나와 노벨상을 받게 되면 우리나라의 현실을 오해하도록 만드는 ‘착시효과’도 생길 것 같습니다. 사실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세계적인 연구자가 나오려면 과학의 저변이 더 넓어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거든요. 기초과학의 성과는 단기간에 얻거나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즐겁게 오랫동안 연구할 수 있을 때만 발전할 수 있는 게 기초과학이고, 노벨상이야 말로 즐겁게 평생 동안 연구에 몰두해야 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받을 수 있는 상이라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연구를 즐겁게 할 수 있으려면 어릴 때부터 창의성 중심의 교육이 필요한데 진학을 위한 경쟁에만 치우쳐 있는 것이 대단히 아쉬운 상황이죠. 어릴 적의 호기심과 창의성을 계속 키워 나갈 수 있는 교육시스템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 믿습니다.”

 

- 2018년부터 고교에서 문·이과 통합교육이 예정돼 있는데 의도에 맞게 잘 진행이 되려면 어느 부분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통합교육은 향후 대한민국의 인재양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모멘텀이 될 겁니다. 여기에서 각별히 주의할 사안은 결국 각 분야를 어떤 수준까지 교육할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겠지요. 수학과 과학 같은 과목은 모두가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도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누구나 배워야 한다고 믿습니다. 인문과 사회 역시 사람 사이에서 서로 부딪침 없이 섞여 사는 것이 교육의 궁극적 목표라는 점에서 당연히 배워야 할 분야입니다. 따라서 각 분야가 수박겉핥기 식에 그쳐서는 통합교육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통합교육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인문학적, 과학적 소양을 함께 갖출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려되는 점은 모든 학문의 중요성이 평등하게 취급되면서 이공계 진학희망자들이 필히 갖춰야 할 과학지식의 수준을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유념해야 할 점이라 생각합니다.”  

 

- 국가위기에 대한 목소리가 높은 지금,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총장님의 통찰력과 혜안을 나눠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나라는 그간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빠른 성장을 해왔던 만큼 정체기가 더욱 고통스럽게 느껴져 위기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많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하튼 사회 여러 측면에서 변곡점에 처해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선진국을 빠르게 따라왔지만, 이제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그 방향을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겠지요. 저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선 교육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산업의 변화를 주도하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선구자를 키우려면 당연히 창의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됩니다. 그런데 이런 교육을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장벽은 기성세대의 가치관입니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찾고, 개척해 나갈 때에야 행복해진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점수위주의 ‘줄 세우기’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창의성, 도전정신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도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겠죠.”

 

- 과학기술한림원의 역할과 나아갈 방향에 대한 조언도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에 있어 모든 측면의 정점이 한림원이라 믿습니다. 과학기술자라면 누구나 회원이 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을 수 있는 그런 권위와 능력을 갖춘 기관이 되길 희망합니다. 아직 일천한 역사이지만 그런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아울러 과학기술자들끼리의 소통을 넘어 다른 정치, 사회, 경제 분야 등과의 소통에도 힘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이제는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우리만이 아닌 다른 분야의 사람들도 나서서 주장하게끔 분위기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한림원은 해낼 수 있는 일로 믿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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